2007년 6월 1일 금요일

나의 수호성인이신 성 타르시치오(8.15)


성인명 타르시치오(Tarsicius)

축일 8월 15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복사, 순교자
활동지역 로마(Rome)
활동연도 3세기경
같은이름 타르시치우스, 타르시키오, 타르시키우스

성 타르시키우스(Tharsicius, 또는 타르시치오)의 행적에 대한 것은 교황 성 다마수스 1세(Damasus I, 12월 11일)가 그에게 바친 "성체를 위한 소년 순교자"라는 헌시에 언급된 것이 전부이다. 교회의 전설에 의하면 그는 복사의 수호성인들 중의 한 사람으로, 소년다운 용기와 신앙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그에 관한 전설 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그가 살던 3세기 말경에 많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박해를 받았다. 한번은 미사가 끝난 후 신부가 감옥에 갇혀 있는 신자들이 성체를 모시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였으나, 아무도 감히 감옥까지 성체를 모시고 갈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가는 도중에 이교도들에게 붙잡혀 죽음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이때 어린 성 타르시키우스가 나서서 그 일을 자청하였다. 너무 어린 것을 걱정하는 신부에게 그는 자신이 어리기 때문에 경비병을 속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신부도 이 말에 동의하였다. 그래서 그는 성체를 모시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그런데 그는 감옥으로 가는 길에 친구들을 만났다. 그들은 성 타르시키우스에게 같이 놀자고 했지만 그는 급한 일이 있다며 거절하고 서둘러 가려 하였다. 그런데 한 친구가 그의 손에 있는 성체를 발견하고 빼앗으려 하자, 이를 거부하는 성 타르시키우스와 친구들 간에 싸움이 벌어지고 급기야는 친구들이 돌로 그를 쳤다. 이때 지나가던 군인이 다가오자 친구들은 도망갔고, 그는 온몸에 피를 흘리면서도 자신을 주교에게 데려다 줄 것을 부탁하여 주교에게 성체를 감옥에 갇혀 있는 신자들에게 전해 줄 것을 부탁하며 숨을 거두었다. 이 이야기는 영국의 추기경 와이즈먼(Wiseman)의 소설 "파비올라 혹은 카타콤바의 교회"(Fabiola or the Church of the Catacomb, 1854)의 소재가 되어 더욱 유명해졌다.
성 타르시키우스는 복사와 첫영성체하는 어린이들의 수호성인이다.

위의 내용이 나의 수호성인이신 성 타르시치오에 대한 이야기이다. 가톨릭 굳뉴스의 성인사전에서 가져온 것이며 인터넷 한글자료에서 찾을 수 있는 전부이다.
와이즈먼 추기경의 소설을 찾을 수 있으면 좋을텐데 사실 찾기가 좀 힘들다.

남들에게 내 본명을 소개할때면 항시 같은 질문이 따라온다...그분이 누구셔?...
그러면 바로 위의 내용을 간략 요점 정리해서 알려준다. 대부분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냥 그려려니 하면서 넘어가준다.

우스개 소리지만...미사가 끝난뒤 성당앞에서 '베드로 형님', '마태오 형님' 이렇게 부르면
최소한 열명이상의 사람이 뒤돌아본다. 그런면에서 타르치시오 성인이 좋다.

복자와 어린이의 수호 성인이신 타르시치오 성인...
웬지 더욱 정이 가는것 같으면서 내맘이 더욱 끌리는 성인이다.
아마 성인께서도 당신을 수호성인으로 삼은 내가 맘에 들지도 모를겠다.

군대에서 성당 다니던 이야기 3부

다들 안녕하시지요!
여러 형제자매님들의 열화같은 성원에 몸둘바를 몰라하고 있는 타르치시오입니다.
저에게 메일이 무려 열한통이나 왔습니다. 열통은 스팸이었습니다.
메일보내준 원식형제님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이따가 그 호프집으로 나와라.친구야....)
보잘것없는 글이지만 많이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작하기전에 부탁 말씀 하나 드리겠습니다.
글을 퍼오거나 퍼가는걸 즐겨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제 졸작들은 퍼가심을 자제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저작권 같은 어려운 문제때문이 아니라 다른 게시판으로 돌아다니게되면
제가 너무 부끄러워서 그렇습니다. 제글은 이곳 굿뉴스 자유게시판 전용입니다.
(전혀 퍼갈 마음이 없으시다구요.....^^;;)
그리고 배경무대가 어디냐는 질문을 상상하였는데 아무도 물어봐주시지 않던군요...
전혀 궁금하지 않으시나 봐요? 힌트를 드리자면 머나먼 남쪽 되겠습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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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성당 다니던 이야기 3

신부님의 편지를 가슴에 꼭 품고 반지를 만지작 거리면서 부대를 향해 출발한 용감한 일등병.
앞으로 어떤일이 닥칠지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하고 즐거운 마음에 룰루랄라 였습니다.
잠깐의 면담이 너무나도 힘이 되었지만 귀중한 시간 삼십분을 희생해야 되었던 것입니다.
부대가 보이는곳에 -버스를 갈아타야하는- 도착하니 이미 시간은 20여분밖에 안남아있었습니다.
다음 버스는 아홉시 정각....선택의 길은 오직 하나...
산중턱의 부대까지 가는 지름길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1년이상 근무한 사람들만이
급한일이 있을때 목숨 걸고 이용한다는 그 산길....깎아지른 절벽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바람도 많이 부는 바닷가 절벽의 바로 그 길....언젠가 전설처럼 탈영한 병사가 그길로 가다
지쳐서 부대로 돌아왔다는 그길이었습니다. (뻥이 심하지요.그래요...저 뻥쟁이입니다.)
불빛하나 없는 그 길을 땀을 삐질삐질 흘려가며 부대에 도착하니 아홉시에서 딱 2분 남았던군요.
신기록이었습니다. 아마 지금까지도 그 기록은 아무도 깨지 못했을겁니다. 군인정신.....
올라가면서 내내 고민했던것은 편지를 어떻게 보관하여야 들키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지요.
소중한 편지를 소홀히 보관할수도 없고 그렇다고 사물함에 넣어놓자니 누군가에게 들킬것도 같고...
그래서 생각해낸게 고향집으로 보내버리자는 거였습니다. 머리 좋은 저자신에게 흐뭇해하면서
부대에 들어선 저는 깐깐하기로 소문난 부대장에게 귀대신고를 하러갔습니다.
머리가 반쯤 벗겨진 대장은 자기방에서 열심히 티비를 시청하고 있더군요.
* 충성! 신고합니다. 어쩌구 저쩌구.......이에 신고합니다.....충성!....
- 잘 갔다왔냐? 일은 잘 처리하구?
* 네...그렇습니다...
- 근데 너 웬 땀을 그렇게 흘리나?
* 아닙니다. 뛰어와서 그렇습니다.
- 그으래 ?!...너 이리 와바...
* (헉...갑자기 이 아저씨가 왜 이러지...^^;;;)
저에게 다가온 대장은 갑자기 제 호주머니를 마구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편지를 조용히 감추고 싶었던 저의 작은 소망은 주님의 은총으로 깨지게 되었습니다.
편지를 손에 쥐고 앞뒤를 살펴보더니 자기 이름이 쓰여져있는걸 발견하고는 한마디 하더군요.
- 이게 무슨 편지냐?
* 네. 평소에 대장님을 흠모하는 제 마음을 적어 보았습니다. <--- 라고 하고 싶었습니다...
* 우물쭈물.....
편지를 꺼내들고 읽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저는 철조망에 매달리는 매미가 생각나기도 하고
유류고 뒷편에 굳건한 자태를 뽐내고있을 곡갱이 자루가 친근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다읽은 편지를 책상위에 내려놓더니 시선을 시끄럽게 떠들고있던 티비로 돌리면서
- 알았다. 그만 들어가봐라...
* 네. 충성!....

내무반에 돌아와서도 내내 걱정이었습니다. 뭐라고 말을 했으면 속이라도 편할텐데.
전혀 가타부타 말이 없이 돌려보냈으니 머리속으로 온갖 생각들이 지나갔습니다.
혹시나 고참을 호출하지는 않을까? 그려....분명 새벽녁에 몽땅 집합시켜서 한 따가리 할거야.
어쩔수없지뭐...내가 나쁜일을 한것두 아니구...에잉...잠이나 자자...
다음날. 불안한 마음에 눈을 뜨고 하루를 시작하였는데 웬걸...아무일없이 평상시처럼 지나갔습니다.
또 그다음날도...그리고 그 다음날도...그리고 금요일도 그렇게 폭풍속의 고요함처럼...
토요일 점심식사를 끝내고 열심히 설겆이를 하는 저에게 부대장실에서 호출이 왔습니다.
그럼 그렇지...토요일 오후에 뺑뺑이를 돌리는구나....
사무실에 들어가보니 서무를 보는 왕고참 하나만 남아있더군요.
* 충성! 용무있어 왔습니다.(빨리 끝내고 편히 쉬자.)
- 어~ 왔냐...근데 너 재주 좋다...
*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네?
- 대장이 너 종교 외출 보내주라고 결재 올리렌다.
* (엥?) 네?
- 그러니까~ 행선지가 어딘지 시간이 몇시부턴지 빨리 말해.
* 넵. 장소는 ??공소이고 시간은 저녁 이십시 삼십분부터입니다.
- 그럼...이십시부로 끊어 주면 되겠냐?
* 네. 감사합니다.
- 알았어. 이따 나가야되니 가서 준비하고 십구시 오십분에 신고하러 와라.
* 네. 알겠습니다. 충성! 용무마치고 돌아갑니다.
문을 나서는 저에게 한마디를 던지더군요.
- 토요일 저녁에 외출나가는 놈은 니가 처음이다. 행동 조심하고 똑바로 해라...
그리고 올때 나 담배 한갑 사다주구....

이렇게 해서 지금까지 유래가없던 토요일 저녁 한밤중에 종교 외출을 나가는 전설이 만들어졌습니다.
지금도 궁금한게 있는데 그때 그 신부님은 그 편지에 뭐라고 적으셨을까요?
혹시 성당 안보내주면 탈영할것 같으니 신경쓰라고 적으셨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편지 한장에 전례가 없던일을 성사시키게 만들었을까요?
한번도 소지품 검사를 안하던 사람이 어떻게 그날 밤은 호주머니를 뒤지게 했을까요?
이 모든게 주님의 은총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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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부터는 공소를 다니면서 있었던 일들을 중심으로 쓰겠습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군대에서 성당 다니던 이야기 2부

몇년전 가톨릭 굳뉴스 자유게시판에 올렸던 미완의 이야기입니다.
언젠가는 마무리를 해야된다고 생각은 하지만 쉽게 손이 가지 않는군요.
이곳 블로그에 올려놓고 반드시 마무리 지어야지요.

2부
너무나 게으른 타르치시오입니다.
뒷글을 올린다 올린다 하면서도 게으름을 피우다 이제야 올리네요.
회사내부에서도 복잡한 일들이 많아서 정신없었지만
퇴근하고 나서도 월드컵에 푹 빠져있다보니 여간 시간 내기가 어렵더군요.
그런다고 돌멩이를 집어드시는 분....앞으론 열심히 올려보겠으니 너그러이
용서해주시기를....

아래 좋은글을 올려주신 구본중님 보기가 부끄럽습니다.
님의 글이 삼류라면 저는 류자를 붙이기에도 부족할듯합니다.
그럼 성당을 드디어 다니게 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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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성당 다니던 이야기 2

지난번에 제가 있던곳의 환경은 대강 말씀드렸었지요...
그런 곳이다보니 성당에 가야 된다는 말을 간부나 고참들에게 꺼낼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가끔 혼자있는 시간이면 생각나는 기도문을 웅얼웅얼 외는게
전부였습니다. 그렇게 생활을 하던중에 삼개월정도 지나면서부터는 천금같은 기회가 왔습니다. 부대가 워낙 외지에 있는 곳이다 보니 한달에 두번정도 공문서 수령이나 기타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기 위해 가까운 시내로 외출할수있는 기회가 생긴것 이었습니다.
가깝다구 해봐야 걸어서 산길을 내려가 완행버스를 타고 10분, 거기서 직행으로 갈아타고
40분을 가야 제법 큰 도시가 나오지요.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당시에는 그랬습니다.
고참들 끝발에 밀려서 못가던 저도 드디어 기회가 오게됐습니다. 항시 빠지지않고 나가던
제 고참이 갑자기 누가 면회를 온다고 저한테 양보아닌 양보를 하게 됐던겁니다.
두근거리는 마음에 시골양반 서울가는 자세로 엉거주춤 시내로 나갔습니다.
저도 군대오기전에 수도꼭지에서 물 받아 먹던 사람인데 오랜만에 사람많은 곳에 가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더군요. 군대다녀오신 분들은 다들 아시겠지요...
눈썹을 휘달리며 맡은 일을 끝내고 보니 부대 복귀까지 딱 한시간이 남았습니다.
대한민국 어디서나 교회를 찾는 일은 너무나 쉽습니다. 고개들어 아무데나 보면 십자가가
보이니까요... 하지만 성당을 찾아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외지에서 성당을 찾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전화를 하는거지요. 순서대로 적자면
ㄱ. 가장 가까운 공중전화를 찾는다.
ㄴ. 일일사에 전화해서 교구청 번호를 묻는다.
ㄷ. 교구청에 전화해서 현재 위치를 말한다음 가장 가까운 성당을 추천받는다.
ㄷ. 즐거운 마음으로 룰루랄라 성당으로 간다.
성당에 도착해보니 공중전화에서 이십미터쯤 되는곳이더군요.
알고보니 교구청건물이 성당 바로 옆에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주교좌성당이었지요.
들어가보니 기도 드리시는 자매님 두분이 계셨습니다.
저도 제대에 인사드리고 앞자리에 앉아 평소에 못했던 밀린 기도를 열심히 드렸습니다.
이글을 읽으시는 분들중에도 그런 경험이 있으시겠지만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요.
얼마나 울었는지 나중에는 소리까지 내가면서 꺼이꺼이 하면서 울었답니다.
생각하면 웃기는 광경인데 덩치가 곰만한 대한민국 군인이 성당에 와서 소리내어 울고
있다는거...아마 거기있던 자매님들은 뭔가 큰 사고를 친 군인인줄 알았겠지요.
사실 제가 무슨 한 맺친것도 아니고 그런다고 슬픈일이 있는것도 아니었지만
웬지 마음이 그랬습니다.
그날은 그렇게 열심히 밀린 기도를 드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부대에 복귀하였습니다.
다음에 꼭 다시 오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그 뒤로 세번정도 그 성당을 찾아갔습니다. 매번 기도를 드릴때마다 눈물이 나오는것은
어쩔수없었습니다. 세번째로 성당을 방문하던날 저는 딱 걸렸습니다.
그날은 화요일이었는데 부대 행사 관계로 오후에 나와 복귀 시간이 저녁 9시로 많이 늦어져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성당에 도착했을때 어둑어둑 해가 지고 있었는데 나와보니 완전히
깜깜해있더군요. 급한 마음에 발걸음을 채촉할려는 그 순간....
성당 입구에서 누군가가 저를 불렀습니다.
"이보게~ 부대갈때 무얼 가지고 가나" <---- 이건 농담입니다.
검정옷을 입고있는 키가 큰 남자였습니다. 놀랬습니다.
자세히보니 사제복을 입으신 신부님이 저를 보고 계셨습니다.
잠시후 얼떨결에 집무실에 따라들어간 저는 신부님이 타주신 커피 한잔을 앞에 놓고 있었습니다. 솔직한 마음으로 많이 떨렸습니다. 이제 갓 햇병아리 군인인 제 신분으로는
미사를 안보내주는 부대에 있어서 이렇게 성당에 와서 기도한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그랬고
만약에 이일이 부대에 알려지면 괜한 불이익을 받을까 적지않아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신부님이 무거운 분위기를 깨며 말씀하셨습니다.
- 그래...미사는 잘 참석하나?
* 넹? 아닙니다. 상황이 좀 그래서 참석을 못하고 있습니다.
- 그러면 안되지. 미사는 꼭 참석해야지.
* 아~~ 네. 당연히 그래야되는데 부대가 어쩌고 저쩌고....공소가 어쩌고 저쩌고...
기타등등........
- 그래도 꼭 미사는 참석해야지...자네 부대장 이름이 뭔가?
* (허거덕..이러면 안되는데...말하면 큰일나겠다..) OO부대의 이 아무개입니다.
- 잠시만 기다리게...내가 부대장앞으로 편지를 한장 써주겠네..
* (편지? 흠..다행이군....그냥 받아서 안 갖다주면 되겠네...)
만약 편지를 부대장에게 갖다주면....저..제가 신부님한테 편지를 한장 받아 왔는데
이것 좀 봐 주시겠습니까?...그게 뭔데....저를 꼭 성당에 보내달라는 내용인데요..
흠.그래..가서 내부반장좀 불러와라...쫄병이 빠져가지고 성당에 다니고 싶다고
신부님한테 부대일을 고해바쳐....교육시켜바...너 일루 와바바...퍽..퍽..으악...
이제부터 너는 외출금지다...넹....흑흑흑 ....(자동 연상중)
음...이러면 안되겠군...그냥 영광으로 알고 아무도 모르게 해야지...
잠시후 달필로 부대장이름을 적은 편지 봉투를 하나 건네주시며
- 이거 꼭 부대장에게 전해주게...
* 네...알겠습니다.
- 그리고 자네 대대장도 이 성당에 다니니까 이번 주일에 내 꼭 이야기함세.
* (우잉~~ 내가 큰사고를 치겠는데) 네...감사합니다...신부님...
- 그리고 이건 묵주 반지인데 시간나는데로 묵주기도를 드리게...
* (눈물이 앞을 가리면서) 네...감사합니다...신부님...

이렇게해서 심장위 가슴 호주머니에 신부님의 편지를 간직하고 저는 부대를 향하여 출발하였습니다.

다음에도 꼭 읽어 주셔요....빨리 올리겠습니다.

군대에서 성당 다니던 이야기...1부

몇년전 가톨릭 굳뉴스 자유게시판에 올렸던 미완의 이야기입니다.
언젠가는 마무리를 해야된다고 생각은 하지만 쉽게 손이 가지 않는군요.
이곳 블로그에 올려놓고 반드시 마무리 지어야지요.

1부...
평화를 빕니다.

요즘들어 부쩍 게시판의 논쟁이 가열되는것같아 다들 열도 식히시고
저도 옛 추억을 잊어먹기전에 다른 분들과 공유하고 싶어 이렇게 졸필이지만
글을 올려봅니다. 너무 못 쓰는 글이라 생각하시더라도 읽어 주시고 돌은 던지지 마시기를..

군대에서 성당 다니던 이야기 (프롤로그)

아주 오래전 옛날인 1989년 드디어 군대를 가게 되었습니다.
훈련소를 거쳐 교육대를 거쳐 여기저기 돌다가 드디어 긴 군대 생활을 보낼
자대에 도착하고 보니 그곳은 바닷가 절벽위에 있는 작은 부대였습니다.
앞으론 넓은 바다가 펼쳐있고 뒤로는 허공이 있는 산꼭대기 암자같은곳이었지요.
걸어서 오르면 삼십분 내려가면 이십분이 걸리는 그곳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이라고는
산아래에 있는 삼십여가구가 살고있는 동네 하나뿐이었습니다.
개신교 교회하나 없는 그런 촌동네였습니다. 우리 부대원들이 그 마을에서 갈 곳이라고는
딱 한군데 작은 포구앞에 있는 점방이었습니다.
부대에 도착해 어느정도 사람 구실을 하게 될 때쯤 저의 최고 관심사는 성당을 나가는 것 이었습니다. 워낙 작은 부대라 종교 활동을 보장 받는것도 아니고 또 부대안에서 가톨릭 신자는 저 하나 뿐이었거든요. 개신교 신자는 몇명이 되어 그들은 일요일 아침이면
당당하게 종교 외출을 나가곤 했습니다. 게다가 가장 가까운 성당이라고는 큰길에서 차로 이십분거리에 있는 오래된 공소밖에 없었으니 더더구나 말을 꺼내기가 애매한 상황이었습니다. 큰도시의 성당 신부님이 토요일 저녁 특전 미사를 마치시고 차를 몰고
공소에 오셔서 미사를 시작하는 시간이 저녁 8시 30분...끝나면 9시 10분쯤이 되었으니
산속에 있는 저는 미사를 보러 갈려면 최소 7시30분에는 출발을 해야 된다는 결론이었고
더 어려운 사실은 미사가 끝내고 부대로 복귀하는것이었습니다. 참고로 마을앞 큰길로 도착하는 완행버스는 저녁 10시면 끊어지니 잘못하면 바닷가 벼랑을 기어올라야 하는
비참한 신세가 될수도 있다는 거였습니다. 사람이 불가능한 확률에 도전을 하게되면
무서운 집착을 보인다는데 그건 바로 저를 두고 하는 말이었던것 같습니다.
여러가지 우여곡절에 다양한 에피소드를 만들어내고 나서야 드디어 저는 미사에 참여할수있는 엄청난 특권을 얻었으니 그 때가 바로 1990년 1월이었습니다.
이때부터 "불쌍한 군발이 성당 다니기"란 신화를 만들어 냈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써보겠습니다.
옛날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리내요...
끊기지않고 쓸수있게 응원 해주십시요.
그럼 다음에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