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6월 24일 일요일

Get on the boat ......

Get on the boat, do your job, get back home again....

2007년 6월 22일 금요일

내 모니터는 어떤 상태일까요? (펌)



모니터 밝기 조절할때 유용하게 쓰세요.

9~0까지 모든 숫자가 보인다면 - 모니터가 비정상적인 출력으로 눈이 아픈 상태.
3~4까지 보인다면 곧 교체해야 할 모니터.
7~8까지 보인다면 정상이라네요.

2007년 6월 21일 목요일

무라카미 하루키 인터뷰 기사

*어딘가의 블로그에 있기에 떠왔습니다. 양해해주시기를...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미 완성한 소설은 다시 들춰보지 않는다고 했다. 전세계적을오 6백만부 팔린 '상실의 시대'도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은 '해변의카프카'도 마지막 문장에 마침표를 찍음과 동시에 전부 과거가 된다. 그에게 중요한 건 언제나 다음 문장이다. 하지만 우리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그가 모두 궁금했다. 숫기 없는 말투에 조용한 목소리 편안한 진과 해진 라운드티셔츠, 달리기와 고양이. 미국의 TV시리즈 로스트와 빌리홀리데이 그리고 무엇보다 글쓰기. 하와이에서 만난 하루키의 단어들은 그런 모습이었다.

2003년 10월 17일 3시 30분, 하와이 대학의 연구실. 문은 활짝 열려있었다. 방 한가운데 고흐의 그림에나 나올 법한 작고 오래된 나무 의자에 앉아있는 그의 옆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의자에 엉덩이를 반쯤 걸치고 두 다리는 1미터쯤 떨어져 있는 또 다른 의자에 걸쳐 놓은 채 고개만 약간 돌려 방문자의 존재를 확인했다. 무표정한 얼굴을 한 그의 왼손에는 작은 페이퍼백 영문 서적이 들려있었다. 연구실의 두 벽은 책으로 가득했고 책상 옆에는 자전거가 한 대 서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메일을 통해 미안하지만 두번은 곤란하고 한 차례 두시간 정도라면 인터뷰 하고싶다고 했던 9월 19일부터 정확히 28일이 지난 날이었다.


자전거 타시나봐요?

지금 머물고 있는 집이 캠퍼스에서 10분이면 닿을 거리게 있거든요. 학교 올 일이 있을 때마다 자전거를 타요.

어제 하와이 전체가 흔들렸어요. 지진 때문에 많이 놀라셨죠?

일본에선 지진이 많이 일어나지만 하와이에선 생각도 못했던 일이라 놀랐어요.

고베에서 자랐으면 지진을 많이 겪으셨을 것 같은데요.

제가 자라던 때에는 고베에 지진이 많진 않았어요. 지진으로 유명한 고베에서도 그런 일이 없었는데 믿고만 있던 하와이가 흔들려서 글 쓰다가 아니 이게 무슨일인가 싶었죠.

미스터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상, 하루키상 어떤이름이 편하세요?

어떤거라도 좋지만 일본에선 대부분 저를 하루키상이라고 불러요. 아시겠지만 일본엔 나말고도 유명한 무라카미가 한 명 더 있잖아요.

그럼 저도 하루키상으로 부를게요. 하와이에는 언제 무슨 일로 오셨어요?

하와이 대학의 초청으로 8월에 왔어요. 강의는 하지 않아도 되지만 특별강좌는 몇 번 할 것 같아요. 그 동안 문학관련수업에 몇번 초빙강사로 들어갔는데 학생들이 정말 기발하고 요상한 질문을 많이 하더라고요. 하와이에는 아마 내년 여름까지 그러니까 1년쯤 있다가 일본으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하와이에 온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죠? '댄스댄스댄스'에 묘사된 하와이를 보고 분명 와봤으리라 생각했어요.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그렇게 세심하고 정확하게 묘사할 순 없을 테니까요.

처음 온 것이 20년 전쯤인가 그럴 거예요. 그 후로 자주 와서 친구도 몇몇 있어요. 하지만 이렇게 긴시간 오아후에 머무는 건 처음이죠. 전 하와이 섬 중에서 카우아이를 가장 좋아하거든요. 얼마나 좋은지 집 까지 샀을 정도니까요. 조용하고 평화롭고 무엇을 쓰든 집중이 잘 되요. 그래서 3~4년전에 카우아이에 두 세달 머물면서 '해변의 카프카'의 반을 썼어요, 세달은 카우아이, 나머지 세달은 도쿄에서 썼지요.

이번에 하와이에 계시는 동안 어떤 계획이 있나요? 역시 소설을 쓰는 건가요?

네. 좋은 소설을 쓰는 것.

구상중인 소설이 있나요?

일단 지금은 휴식을 좀 취하고 12월쯤 다음 소설에 착수 할 생각인데, 딱히 구상중인 건 없어요. 항상 전 백지상태에서 소설을 시작해요. 이런 걸 써야겠다, 하면 부담이 되거든요. 필요한 건 첫 장면 하나에요. 하지만 그 장면은 굉장히 구체적이고, 생생해야 하며, 명확한 것이라야 해요. 캐릭터도 스토리도 일ㅇ체 정해두지 않지만 확실한 첫 장면만 있으면 자신감이 생겨요. 잘 끝낼 수 있겠다 하는.

그럼 '태엽 감는 새'도 스파게티를 욜이하는 남자라는 첫 장면으로 쓰기 시작하신 건가요?

네. 그때 제 머릿속에는 오로지 하나, 스파게티를 욜이하는 남자 모습만 있었어요. 다음에 어떤 일이 있을지는 저도 몰랐어요. 그냥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이렇게 설명을 해보죠. 저기 저 멀리 점 하나를 찍고 거기까지 달려가기로 해요. 달리는 중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나도 몰라요. 잘 쓰여진 책이 재미있는 이유는 결말을 모르기 때문이잖아요. 저도 똑같아요. 다음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까 궁금하고, 궁금하니까 흥미진진하고, 흥미진진하니까 계속 쓰게돼요.

당신 소설에 나오는 캐릭터는 하나같이 개성이 뚜렷합니다. 스토리도 결말도 없이 그렇게 독특한 캐릭터들은 어떻게 만들어지나요.

나는 캐릭터를 창조하지 않아요. 대신 전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해요. 내 머릿속엔 일종의 캐릭터서랍장 같은 것이 있어서 관찰로 얻은 사람들의 구체적인 이미지를 그곳에 보관해요. 사람은 미스터리에요. 관찰하면 할수록 더 흥미로워요. 할 수만 있다면 집까지 따라가서 보고싶어요. 어떤 책을 보고 어떤 옷을 입는지 누구와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그렇게 하나의 캐릭터가 완성되면 내 머릿속 서랍장에 차곡차곡 넣어두고 필요할 때 마다 꺼내요. 그리고 소설을 쓰면서 캐릭터가 필요할 때 나는 어떤 서랍을 열어야 할 지 아는거죠.

그렇다면 하루키상은 특별한 사람입니까?

저는 스스로를 평범하지 않은 능력을 가진 평범한 사람이라고 정의해요. 책상에 앉아 글을 쓸 때는 난 특별하구나 생각하지만 글을 쓰지 않을 땐, 이렇게 마주앉아 이야기를 할 땐 지나치게 평범해요.

독자들에겐 평범하지 않아 보이는 건 확실해요. 그들은 당신의 소설 뿐 아니라 라이프스타일까지 선망하고 추구합니다. 재즈, 미국 하드보일드 소설, 고양이, 영화, 하루키상이 좋아하는 요리까지요. 당신의 소설 속 문화 아이콘이 상품화 되는 이런 현상은 어떻게 받아들이시나요?

그런 얘기를 종종 듣는데 사실 별 관심은 없어요. 하나의 소설을 완성하고 나면 다음에는 깨끗이 잊으니까 그 주변적인 것들도 저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게 되죠. 난 그냥 글 쓰는 것을 즐길 뿐이에요. 사람들이 그걸 즐기면 좋은거고 아니면 아닌거고. 게다가 난 이렇게 유명한 작가가 되고 싶었던 적은 한번도 없었어요. 전 조용하고 평화로운 나날이 좋거든요. 책을 쓰는게 좋고 소설을 쓰는 건 좋지만 유명한 소설가가 되는건 바람이 아니었어요. 알아보는 사람없이 자유롭게 도시를 활보하고 싶어요. 그래서 내 원칙이 제 얼굴이 알려질 만한 일들 특히 TV출연을 하지 않는거에요.

신주쿠나 하라주쿠 같은곳을 거닐 때도 알아보는 이들이 별로 없나요?

네. 다행히 그간 꾸준히 노력한 결과! 도쿄 한가운데를 걸어도 알아보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신문은 어떤가요? 일본의 신문도 소설가와 페미니스트, 소설가와 정치인같은 구조로 토론이나 논쟁 같은것을 붙이기 좋아하지 않나요?

그렇긴 한데, 방법은 의외로 간단해요. 그냥 고개를 돌리면 돼요. 아무 토론도 안 한다고 하면 되죠. 난 독립적인 개인으로 어떤 그룹에도 어떤 사회에도 속하고 싶지 않아요. 문학계도 싫어요. 작가친구도 만들지 않죠. 제 친구들은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에요. 열띤 비평이나 날 선 토론보다는 음악, 고양이, 이런 얘길 하는게 더 좋아요. 전 사교적인 사람도 아니고 모든 이에게 다 친절하지도 않아요. 내가 사는 세계는 아주 한정된 공간이에요. 숙고 끝에 곁에 둘 사람들을 고르고 그들에게만 최선을 다해요.

소설가중에는 정치, 사회적으로 분명한 노석을 정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도 많은데요. 당신은 어떤가요?

인터뷰를 하다보면 정치적 견해를 묻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 질문엔 대답을 하지 않는 편이에요. 물론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한 개인으로서 내 나름의 의견과 입장은 있지만 그걸 공론화 하는 건 싫어요. 스토리텔러는 견해를 밝히는 사람이 아니라 동의를 끌어낼 수 있는 스토리를 쓰는 사람이니까요. 말을 훌륭하게 잘 하는 능력을 간춘 사람들이 있지만 난 그렇지 못하니까. 대신 전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30대에 쓰신 한 에세이에서 마흔 살이라는 나이는 인생살이에서 꽤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고비인 것 같다고 하셨죠. 그래서 더 이상 이런 소설은 쓸 수 없을 것이다. 라고 할 말한 작품을 써놓고 싶다고요.

기억해요. 아마 '상실의 시대'가 그런 책이었던 것 같아요. 서른 여덞쯤에 썼으니까.

한국에선 당신이 일본 작가로는 유례없는 인기를 얻게 된 데도 '상실의 시대'가 큰 역할을 했죠. 그 책을 읽고 있는 청순한 여자가 나오는 휴대폰 광고도 있었고, 하루키체로 통하는 문체가 유형처럼 번지기도 했습니다. '상실의 시대'가 없었다면 지금의 당신도 없었을까요?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에요. 2백만부가 팔렸대요. 일본 밖으로 제 이름이 알려지게 된 데에는 '상실의 시대'의 역할이 크죠.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상실의 시대'는 제 작가인생에서 일종의 디딤돌 같은 역할을 한 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당신의 소설중 가장 많이 읽힌 책인 만큼 작품성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죠. 특히 기존 일본 소설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독특한 섹스신에 대해서는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한 설정일 뿐이라는 비판도 많지요.

그게 참 묘한게, 제가 그 소설을 쓰기 전에는 평론가들이 하루키의 책에는 섹스나 죽음 등에 대한 묘사가 없다고 엄청나게 공격했어요. 그래서 이걸 쓸 때는 좋다, 내가 이 책에선 성 묘사와 죽음을 제대로 다뤄보리라 생각했어요. 도전이었죠.

소설을 쓸 때마다 그런 과제나 목표치를 정하세요?

어느 소설을 쓸때나 마찬가지에요. '태엽 감는 새' 에서는 스키닝을 묘사했는데 그때도 독자들의 항의 전화를 엄청 받았어요. "대체 왜!왜!왜! 하루키상은 어쩌자고 그런 역겨운 묘사를 하는겁니까?"라고요. 그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잔인하고 폭력적인 묘사를 생생하게 써 보자는것이 도전이었죠. 스스로에게 던진 임무랄까. 운동하는 것과 같아요. 이번 달은 오른팔 근육, 다음달은 허벅지 근육, 다음달엔 어깨, 이런식으로요.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이나 '어둠의 저편'의 섹스신을 떠올려보면 당신은 이제 섹스신 묘사에는 통달한 게 틀림없어 보입니다만

하하. 그렇습니까? 많은 독자들이 내가 그런 묘사를 쓰는 걸 아주 즐긴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저도 쓸 때는 참 민망하고 부끄럽고 어쩔 줄을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말하죠. 하루키, 이건 네 일이야! 멈추면 안돼!

'상실의 시대'가 잘 될 거라는 느낌 같은것이 있었나요?

아뇨, 정말 몰랐어요. 처음엔 단편으로 쓸 생각이었는데 쓸수록 계속 두꺼워지더니 또 그렇게 저절로 베스트셀러도 됐어요. 이야이가 진행될수록 캐릭터가 살아서 움직였어요. 미도리는 미도리대로 와타나베는 와타나베대로, 그들의 의도와 의지가 있었죠. 그래서 내 마음대로 중간에 멈춰버릴 수가 없었어요.

스무 살의 와타나베와 스무 살의 당신, 오버랩되는 부분이 많나요?

아닌 것 같아요. 우선 내 주변엔 와타나베처럼 여자들이 많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비슷한 것도 있어요. 수줍던 20대, 진실을 구하고자 고군분투 했던 거나 삶을 향한 진지한 자세 같은 것.

전 세계적으로 6백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베스트셀러를 쓴 후 얻은 것과 잃은 것은 무엇인가요.

글쎄요. '상실의 시대'는 분명 잘 쓴 소설인 것은 맞아요. 많은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좋아해준다는 건 멋진 일이니까요. 사람들은 모두들 러브스토리를 좋아해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상실의 시대'는 사실 내 스타일의 문학은 아니에요. 그래서 사람들이 이걸 나의 대표작이라고, 내가 쓴 최고의 책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언제부터 그런 염려는 하게 됐어요. 사실이 그렇지 않으니까. '상실의 시대'는 전형적인 리얼리즘 소설인데 전 스스로를 리얼리즘작가라고 생각지 않거든요. 내게 '상실의 시대'는 일종의 도전같은 거였어요. 나도 리얼리즘 소설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럼 어떤 소설들이 하루키 스타일의 문학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해변의 카프카' '태엽 감는 새' 같은 포스트모던을 추구하는 작품이죠.

리얼리즘과 정 반대선상에 있는 그런 소설을 통해 당신이 구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전 독자들을 상상과 비현실의 세계로 안내하고 싶어요. 내가 제시하는 비현실의 세계를 읽으면서 그걸 현실의 일부로 느꼈으면 해요.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그런 비현실의 세상이 존재한다고 믿어요. 제 책을 통해 사람들이 그런 비현실의 세상을 바라보고 즐길 수 있다면 좋겠어요.

한국에는 당신이 바라표한 80여권의 책 중 번역본은 제외한 대부분의 주요작품, 약 50여권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 중 많은 책의 저자 소개 페이지에는 큼지막한 글씨로 "담담한 문체로 현대사회의 소외된 인간상을 그리는 세계적인 작가"라고 하루키상을 소개하고 있죠. 맞는 설명인가요?

그들이 그렇다면 그런거죠(웃음)

직접 저자소개를 쓰게 된다면, 어떻게 표현하시겠어요?

음, 제가 쓰고 싶은 건 한가지에요. 사람 난 그들을 '내 사람들'이라고 불러요. 제 주변의 사람들에 관한 것. 일반적인 사람들에 관한 거죠. 그들이 어떻게 태어나고, 어떻게 사랑하는지.

그럼, 사람에 관해 이야기하는 세계적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하하, 좋은걸요? 그런데 정말 제가 80권이나 되는 책을 썼나요?

모르셨어요?

몰랐어요. 이미 완성한 소설에는 관심이 없어요. 2년이 넘게 걸린 장편도, 닷새만에 완성한 단편들도, 다시 보지 않아요. 출판되면 잊어요. 문장과 캐릭터, 스토리 모두 빨리 잊고 새 작품을 쓰고 싶으니까요. 가끔 옛 작품에 대해 "이런 부분이 참 좋았습니다" 하는 분들을 만나면 전 "아 그렇습니까?" 하고 말하긴 하지만 실은 기억을 못해 미안할 때가 많아요.


만약 누군가 한정된 시간에 당신과 당신의 작품을 알고 싶다고 한다면 그 많은 책 중에 어떤 작품을 권하시겠어요?

음, 어려운 질문이에요. 난 벌써 27년째 글을 쓰고 있잖아요. 긴 시간이죠. 시간대별로 작품의 성격이 달라요. 첫 10년, 다음 10년 그렇게 블록으로 나눌 수 있어요. 굳이 뽑아보라면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상실의 시대' '태엽 감는 새' '해변의 카프카' 정도를 말하겠어요. 가장 많은 에너지를 쏟은 작품이니까요. 한 번도 다시 읽은 적은 없지만 이들 작품은 지금도 구석구석까지 잘 기억하고 있어요. 공을 많이 들였쬬. 단편은 닷새에서 일주일 정도면 끝나는데, 그래서 그런지 오랫동안 기억에 남지 않아요.

혹시 기억할 지 모르겠습니다만,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정말 첫번째 소설이었나요? 그 전의 습작기는 어땠나요.

네. 정말 그게 내 생애 첫 소설이었어요.

첫 번째 독자는 누구였나요?

제 아내요. 아내는 기억을 못한닫고 하지만(웃음) 그때도 지금도 전 항상 책을 출판하기 전에 단 한 사람, 아내에게 의견을 구해요. 그녀는 굉장히 예리한 평론가예요.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죠. 좋은 조언을 많이 줘요.

아내는 어떤 작품을 가장 좋아하던가요?

'어둠의 저편'과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에서는 불륜을 다뤘는데도요?

그러게 말이에요.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굉장히 좋아했어요. 그리고 며칠간 너무 친절히 대해줬어요. 맛있는 것도 매일 만들어주고.

첫번째 독자는 여전히 같지만 많은 것들이 변했겠죠. 데뷔작을 쓰던 74년의 하루키상과 지금 2006년의 당신은 어떻게 다른가요.

그때보다 지금은 더 나은 스토리텔러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요. 그땐 못쓸 것 같은 것들이 많았거든요. 이건 이래서 안되고 저건 저래서 안되고 등등. 섹스신, 폭력신 막 도망다녔어요. 그런데 요즘은 무엇에 대해서라도 쓸 수 있을거라는 자신감이 있어요. 행복한 일이죠.

그간의 작품 중에서 가장 힘들게 쓴 작품을 꼽으라면 어떤 걸까요?

다행히 저는 집중력이 강한 편이어서 힘을 많이 들여 글을 쓰는 편은 아니지만 그 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라면 '태엽 감는 새' 인 것 같아요. 우선 그때 개인적으로 좀 바빴어요. 당시 대학에서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수업준비를 하느라고 바빴어요. 소설 자체의 요인도 있었어요. 전 소설마다 목표가 있다고 했죠? 그런데 '태엽 감는 새'에는 특히 그 목표가 여러 개 있었죠.

팔 근육과 어깨, 배 근육까지 다 단련해야 하셨겠네요.

그렇죠. 그거 다 단단하게 만드느라 3년이 걸렸어요.

결과에는 만족하세요?

그런대로. 내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 책이 되었으니까요.

근육을 단단하게 한 덕분에 퇴고에 걸리는 시간은 좀 줄어들었나요?

음, 그건 아니에요. '해변의 카프카'는 초고가 6개월 걸렸는데 퇴고에 1년이 걸렸어요. 첫 장 부터 끝장까지 대 여섯 번을 고치고 또 고쳤으니까. 6개월간 초고를 쓰면 10개월은 원고를 손 보는 데 보내요.

인세는 달라졌겠죠?! 오른 인세 덕분에 부자가 됐나요?

돈 말하는 거죠? 맞아요. 꽤 올랐어요. 그런데, 믿지 않을 지 모르겠지만 난 돈에 욕심이 없어요. 이런 평범한 옷과 자전거, 시계만 있으면 돼요. 이유 없이 비싼 건 좋아하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아요.

그럼 대체 그 많은 돈으로는 무얼 하시나요?

자유. 자유를 사고, 내 시간을 사요. 그게 가장 비싼 거죠. 인세 덕에 돈을 벌 필요는 없게 됐으니 자유를 얻게 됐고 그래서 글 쓰는 것만 할 수 있게 됐죠. 내겐 자유가 가장 중요해요.

자유를 얻은 대신 스트레스 또한 덤으로 받았을 것 같습니다. 잘 팔리는 작가라는 것, 쉽게 읽히는 소설이라는 것은 행복한 일이지만 스트레스가 되진 않나요? 문학의 위엄에 대한 일반적인 편견이 존재하잖아요.

편견은 편견일 뿐이에요. 나는 되도록 쉬운 단어로 가벼운 문장 안에 심오한 스토리를 담아내고 싶어요. 어려운 단어를 조잡하게 조합해 어려운 문장을 만들었는데 스토리는 텅 비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비극이에요, 그건. 그 보다 비참한 건 세상에 없어요. 복잡하고 어려운 단어를 써야만 역작을 쓸 수 있는 건 아니지요.

새 책 한 권 내실때마다 동시다발적으로 엄청나게 많은 평론이 쏟아집니다. 그 많은 평론이 하루키상을 공정히 평가한다고 보세요?

난 평론은 읽지 않아요. 일본의 평론가들은 내게 그리 친절하지가 않거든요. 한국에도 내 책들이 한국의 전통 문학을 오염시켰다고 말하는 평로노가들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러너데 일본 평론가들은 정도가 더 심해요.

당신에 대한 가장 흔한 오해는 어떤건가요?

평론을 안 읽으니 잘 모르겠지만 샅샅이 다 찾아 읽는 아내의 말을 종합해보면, 일본의 평론가는 일본 문학에 대해서 '이쪽'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원칙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난 '이쪽'이 아니라 '저쪽'으로 가고 있잖아요? 그걸 답답해 하는 것 같아요. 게다가 뚜렷한 내 독자층이 있고 책은 세계 여러곳에서 팔리고 있으니까, 일본 작가인 내 책의 주제가 다르게 잡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당신을 둘러싼 그 수많은 얘기들을 어떻게 다 감당하시죠?

더 강해졌어요. 갑자기 유명하게 됐다고 생각해 보세요. 살아남기 위해선 강해져야 하죠. 사람들은 세계적인 작가라고 칭송하다가 곧 이용해요. 롤러코스터를 타는것처럼. '상실의 시대'가 날개 돋친 듯 팔렸을 때 난 우울했어요. 무거운 짐이었죠. 게다가 아시다시피 평론가들이 베스트셀러 작가를 싫어하는건 만국 공통이잖아요.

하루키상의 마음을 다치게 한 일이 많았나 봅니다.

제 처녀작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3만부가 팔렸고 '양을 쫓는 모험'은 13만부가 팔렸대요. 그 정도가 제게 익숙한 독자 수였어요. 잘했을 때 10~15만부, 그런데 '상실의 시대'가 나왔을때 갑자기 2백만부가 팔렸고 그리고 그때부터 모든 스트레스가 시작됐죠. 어쩐 일인지 균형을 잃고 만 거예요. 하지만 '상실의 시대' 이후 다시 독자수가 20만 정도로 돌아왔어요. 최근작 '어둠의 저편'은 30만부가 나갔다니까요. 그 정도가 전 딱 좋아요. 편안하죠.

하루키는 이 부분에서 굉장히 오래 생각했고 신중히 답했다. 수려하진 않았지만 정확한 영어였다. 하루키는 '먼 북소리'에서 당시의 심상을 이렇게 풀어놓았다. "신문에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어느 서점에서나 '상실의 시대'가 1위였다. (중략) 그렇지만 -이런말을 하는 것이 분수에 맞지 않고 오만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일종의 안타까움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어디를 가도 내가 있을 곳을 찾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상실의 시대'가 백 몇십만부 팔리고 나자 나는 굉장히 고독했다. (중략) 지금 생각하면 결국 나는 그런 상황에 놓이는 것이 체질에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성격도 못 될 뿐더러 그런 그릇도 되지 못한다"

하지만 그 옛날 괴테는 백만 명의 독자도 기대하기 어려운 작가는 단 한줄의 글도 쓰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잖아요. 괴테가 틀린걸까요?

틀리죠. 제 기준으로는. 만약 내 책을 읽는 이들이 아주 적다고 해도 난 쓸거예요. 왜냐면 난 어떻게든 표현해야만 하니까. 멈출 수 가 없어요. 운명이에요. 써야 하니까 쓰는 거예요.

그럼 잘 안 팔릴 줄 알면서도 쓰신 책이 있었나요? 왜 대중적인 인기는 없을 줄 알았지만 그래도 만들고 싶었다고 말하는 영화 감독처럼요.

베스트셀러를 만들기 위해 쓴 적도 없지만, 나만 읽겠구나 하면서도 불도저처럼 밀고 나간 소설도 없었어요. 뭐랄까, 제 독자들은 어느정도 저의 스타일에 중독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충성심이 있는 거죠. 그래서 다음 작품이 괜찮은 정도만 되면 읽어줄 거라고 믿어요. 책이 너무 형편없으면 실망하고 안 사겠지만 적어도 형편없지 않을 자신은 있어요.

멋집니다. 하루키상.

하하.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괜찮은 성적인 것 같지요? 저도 러브스토리를 좋아해요. 소년이 소녀를 만나 일어나는 행복하고 슬프고 즐거운 러브스토리. 하지만 그런 소설을 쓰자면 위험 요소가 있어요. 나의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제겐 작가로서 나름대로 구축한 흐름이랄까, 방향이 있어요. 나를 믿고 그 쪽으로 따라와주는 독자들은 하루키가 이번에 이런 소설을 만들겠구나. 하는 믿음이나 어떤 확신이 있을 거예요. 그 확신을 흩트려놓고 싶지가 않아요. 러브스토리, 미스터리, 모두 나쁜 건 아니죠.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야기를 하는 건 자연스럽고 좋은 일이니까. 다만 내 소설에는 내 안의 세계를 담고 싶어요.

당신이 걸어가는 그 길의 종점은 어디인가요.

제 목표는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같은 책을 쓰는거예요.

어떤 면을 말씀하시는 거죠? 복잡하고 다양한 캐릭터와 구성?

물론.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안에는 전 우주가 담겨 있어요. 너무 다양한 사실들과 시스템, 세계, 스토리가 그 안에 다 들어가 있어요. 몇 번을 읽어도 또 배울 점이 있죠.

'위대한 개츠비'도 좋아하는 책으로 유명하죠. 하지만 당신이 하도 좋다고 해서 '위대한 개츠비'를 봤다는 독자들 중에 당신의 편애를 이해 못하겠다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어떤 점이 그렇게 좋은거죠?

어려운 질문이에요. 뭐랄까 '위대한 개츠비'는 나에게 교과서라고 할 만한 책이에요. 스토리를 구성하는 법, 대화를 불러오는 법, 글쓰기에 관한 모든것을 그 책에서 배웠으니까요. 수도 없이 읽었고 지금도 읽고 있어요. 읽을 때마다 항상 배울 점이 있어요. 단어 선택도 좋고 문장도 유려하고 스토리도 훌륭해요.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죽기 전에 '위대한 개츠비'를 번역하겠다고 쓰신 적이 있죠.

네. 서른네 살 때였을 거예요. 내가 예순이 되기 전에 반드시 '위대한 개츠비'를 멋지게 번역하리라 다짐했었어요. 예순이 되려면 몇년 남았지만 지난 10월에 번역을 마쳤어요. 출판한 지 열흘 정도 됐을 때 이미 14만부가 나갔대요. 기다려준 독자가 많았나 봐요.

당신이 번역한 '위대한 개츠비'를 냉정하게 평가한다면요?

잘한 것 같아요. 일본엔 대여섯 권의 '위대한 개츠비' 번역본이 있는데 아마 내가 한 것이 최고일 거에요

그 자신감은 어디서 오는 거죠?

말할 것도 없어요. 분명한 사실인걸요. 번역하면서 일본어의 어떤 단어가, 혹은 문장이 '위대한 개츠비'의 원어를 대신할 수 있을까 신중히 생각했고 골라서 썼어요. 그게 참 어려웠고 동시에 가장 재미있었던 점이요.

자주 언급하시는 F.스콧 피츠제럴드, 레이먼드 챈들러, 리터드 브라우티건, 커트 보네거트 같은 작가 외에 좋아하는 일본 작가도 있나요?

오에 겐자부로. 일본 작가의 작품은 많이 읽진 않았지만 그의 작품은 좋아해요. 어려서부터 전 외국문학을 더 좋아했어요. 특히 러시아 문학에 심취해 있었고 영어를 배우면서부터는 영어로 읽는 것을 즐겼어요.

요즘 작가 중 그들과 비교할 만한 이가 있을까요?

음, 내가 찾은 바로는 아직 없어요. 좋아하는 작가가 있지만, 어렸을 때처럼 이런 글을 쓰면 좋겠다 싶은 작가는 못 찾은 것 같아요.

지금 한국에서는 새롭게 등장한 일본 작가들의 작품이 대단히 인기를 모으고 있습니다. 에쿠니가오리, 요시다슈이치, 가네시로가즈키, 온다시쿠등 '포스트 무라카미 하루키'라고 명명하기도 하는 일본의 젊은 작가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대답하기 전에 우선, 아시죠? 나도 아직은 젊은 축에 속한다고요! 일본 현대 문학은 잘 안 읽어요. 소설을 쓰지 않을 때는 전 주로 번역을 하는데 번역하는 책과 관련된 책 위주로 읽기 때문에 다른 책을 읽을 시간이 없어요. 내가 안 읽어도 다들 잘만 하고 있는 것 같은걸요.

언젠가 에세이에서 한 문하생이 자신의 소설을 평가해달라면서 당신에게 원고를 보냈다고 썼습니다. 그 문하생이 장어덮밥을 대접한다길래 만나서 평을 해주었다고 했죠. 누구라도 장어덮밥만 사면 당신에게 평가를 받을 수 있나요?

정말 제가 그런 얘기를 했던가요? 요즘은 남이 쓴 원고에 대한 비평은 하지 않는 편이예요. 종종 그런 부탁은 받지만 정중히 거절해요. 도움이 되고 안되고를 떠나 조목조목 따지고 비판하는 것이 싫어요. 하지만 멋진 여인이 와서 "내 원고를 좀 읽어주세요" 라고 한다면 제가 어찌 안돼! 라고 말 수 있겠어요(웃음)

어렸을 때 이렇게 성공한 인생을 살 거라는 생각은 해보셨나요?

전혀요. 전 일단 작가가 될 거라는 상상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러니 제가 얼마나 놀랐겠어요. 스물 아홉 살 내가 소설가가 됐을 때 친구들도 안 믿었어요. 어릴 땐 쓰고 싶은 것이 하나도 없었어요.

일기도 안 쓰셨어요?

네. 난 일기 쓰는게 정말 싫었어요. 편지도 싫었죠. 그런데 우리 아내에 따르면 연애편지는 참 잘 썼대요. 굉장히 감동적이었다고 하던걸요? 생각해보면 아내가 나랑 결혼한 것도 그때 쓴 편지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명색이 전문 작가니까(웃음)

그럼 뭐가 되고 싶으셨어요?

글쎄, 별로 없었어요. 다만 난 음악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그래서 재즈바를 오픈했고, 재미있게 일했어요. 결국 소설을 쓰게 됐지만.

다시 소설얘기로 돌아가 볼게요. 하루키상도 종종 주인공에 연민을 느끼시나요? 당신의 소설을 읽다보면 슬프고 외로워집니다.

물론입니다. 동정이 없으면 어떤 것도 쓸 수가 없잖아요. '스푸트니크의 연인'을 읽었다고 했죠? 주인공이 열아홉살 레즈비언이잖아요. 쉰살을 넘어 이 소설을 시작했는데 그 때의 내가 열아홉의 여자아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레즈비언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알았겠어요. 알리가 없죠. 하지만 온 힘을 기울여 나 자신을 스미레에 투영시키면 그렇게 연민을 갖고 접근하면 스미레로 살다 보면 그림이 그려져요. 아, 이런 기분으로 사랑하겠구나. 이래서 서운했구나. 그녀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거예요. 모든 건 강한 동정에서 시작해요.

"22살의 봄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랑에 빠졌다. 드넓은 평원을 곧장 달려가는 회오리바람 같은 격렬한 사랑이었다"로 시작하는 '스푸트니크의 연인'은 두 여상간의 사랑을 그리고 있죠. 뮤라는 이름의 한국인 여자주인공을 어떻게 탄생했나요? 실제 모델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제 어시스턴트가 재일 한국인2세예요. 지난 10년간 가장 가까이에서 절 도와준 친군데, 그녀를 보면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어요. 가족에 대해 얘길 많이 했거든요. 책을 쓰기전에 미리 꼼꼼히 연구를 하고 조사를 하는 타입은 아니에요. 가끔, 아주 가끔 그런 일이 있기도 하지만. '해변의 카프카'의 배경이 된 시코쿠에 대해 쓸 때도 그 근처는 가본 적도 없었어요. 나중에 책을 쓰고 가봤는데, 뭐랄까 데자부같은 느낌이었어요. 한국에도 가본 적은 없지만, 그녀에게 들은 이야기에서 출발해 열심히 상상했어요. 참, 그녀는 아름답기까지 해요.

당신도 누군가를 그렇게 사랑한 적이 있습니까? 드넓은 평원을 곧장 달려가는 회오리바람같이 격렬하게?

흠. 내 어렸을때요. 분명, 진실로 최근 일은 아니에요(웃음)

조금 더 얘기해줄 수 있어요?

별로 로맨틱하진 않은데 (옛일을 회상하듯 고개를 숙이고 2분 정도 생각하더니 마침내) 미안하지만 내 이야긴 노코멘트.

노코멘트인 이유라도?

그냥, 내 추억은 내 안에 간직하고 싶어요.

여기까지 얘기했는데 예정된 두 시간이 모두 흘러버렸다. 그는 왼쪽으로 꼰 다리를 오른쪽으로 딱 한번 바꿔 꼬았을 뿐인데 말이다. 그는 아직 할 얘기가 많은 것 같았다. 묻고 싶은 것 역시 많았다. 그래서 우리는 40여일이 지난 11월의 마지막 날 오후, 다시 한 번 같은 나무 의자에 마주 앉았다. 하루키의 주름 많은 따뜻한 손과 두번째 악수를 나누기까지 실은 상당량의 에너지를 소모해야했다. 어쩐일인지 그는 두번째 인터뷰를 다소 늦추고 싶어하는 듯 했다. 만나기 약 열흘 전 '프란츠카프카 문학상'을 받고 돌아온 하루키의 얼굴에는 아직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시간 내 주셔서 고맙습니다. 몇번의 독촉 이메일로 모자라 결국 하루키상의 집 번호와 휴대폰 번호를 누르면서 이럴 권리가 없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어요. 프라이버시와 자유를 무엇보다도 중시하는 당신을 존중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기어코 포토그래퍼와 어시스턴트까지 대동하고 나타난 제 말을 믿으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믿어요. 제 때 답신을 하지 않은 변명을 하자면 프라하에서 돌아온 이후 다소 지쳐 있었어요. 그 때 이후로 모든 인터뷰 요청을 거절하고 있어요. 또 전에 얘기했듯이 제 원칙이 모든 인터뷰는 단 한번, 두시간 이상은 하지 않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이번 인터뷰는 여러가지로 특별했으니까 예외를 둔 것이었죠. 이해해주니 나도 고맙습니다.

프라하는 어떠셨어요? 좀 피곤해 보이세요.

프라하는 좋았지만 시상식은 전혀 행복하지 않았어요. 기자들이 너무 많았어요. TV녹화는 프라하의 지역 방송국으로만 제한을 하기로 분명 언급을 했는데, 나중에 보니 일본 방송국에 필름을 팔았어요. 일본 전역에 뉴스가 나갔어요. 지금도 마음이 불편해요. 그래서 돌아온 후로는 어떤 미디어 접촉도 피하고 있는 거예요. 보통 때보다 특히 더 민감하게 방어태세를 갖추게 된 거죠.

하루키상은 좀처럼 화를 내시지 않을 것 같아요. 무엇이 당신을 불쾌하게 하나요.

기자나 카메라맨, 미디어 관련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

잠깐, 우선 거기서 저는 좀 빼주세요.

오케이, 당신은 제외입니다.

프라하 수상식 일에 대해서 당신이 느끼는 당혹감은 이해가 가지만 아마도 언론들은 국민의 알 권리를 이야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일본국민이 자랑스러워하는 스타작가니까요.

만약 내가 야구선수가 영화배우라면 그렇다면 TV에서 내 얼굴을 보여줘야 맞는것이겠지만 작가인 나는 TV에 나가지 않아도 되는거 아닌가요? 작가는 원한다면 익명성을 보장 받을 권리가 있어요.

수상사실 자체는 행복한 일 아니었나요?

솔직히 아니에요. 난 그런 문학상에는 관심이 없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작년에 누가 노벨 문학상을 탔는지, 재작년에는 누구였는지 기억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기억하는 건 좋은 스토리, 좋은 소설이죠. 내게는 독자가 전부예요. 독자가 내 소설을 기억해준다면 그걸로 족해요. 문학상은 잊혀지는 거니까, 큰 의미는 없어요.

지금 쉰 여덟이시죠? 지금은 어떤 것들이 당신을 행복하게 하나요.

아니, 만으로는 쉰 일곱이라고요(웃음) 스무살 땐 여자친구랑 데이트하는게 좋았어요. 지금은 글을 쓸 때가 가장 행복해요.

데이트보다 글 쓸때가 더 행복하다니. 하루키상에게 매력적인 여자란, 당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100% 여자아이란 어떤 모습인가요?

100% 여자아이라, 사실 전 여자에겐 별 기대를 안해요(웃음) 좀 난해한 존재여야지. 제가 그들에게 기대하는 건 단 하나, 저와 있을 때 즐거운 시간을 갖는거예요. 아무리 예쁘고 똑똑해도 나와 대화가 안 통한다면 그건 싫어요. 하지만 내가 농담을 했을 때 그녀가 웃어준다면 그걸로 충분히 행복해요

영화 이야기 - '국경의 남쪽'과 '남과 북'

작성중
부제 : 영화 이야기를 핑계로 가볍게 이야기하는 무거운 것들...



국경의 남쪽 남과 북

개봉 : 2006년 개봉 : 1965년
제작사 : 싸이더스FNH
감독 : 안판석 감독 :김기덕
출연 : 차승원/조이진/심혜진 출연 : 신영균/엄앵란/최무룡
각본 : 정유경 각본 : 한운사
음악 : 한재권 음악 : 박춘석








































2007년 6월 1일 금요일

나의 수호성인이신 성 타르시치오(8.15)


성인명 타르시치오(Tarsicius)

축일 8월 15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복사, 순교자
활동지역 로마(Rome)
활동연도 3세기경
같은이름 타르시치우스, 타르시키오, 타르시키우스

성 타르시키우스(Tharsicius, 또는 타르시치오)의 행적에 대한 것은 교황 성 다마수스 1세(Damasus I, 12월 11일)가 그에게 바친 "성체를 위한 소년 순교자"라는 헌시에 언급된 것이 전부이다. 교회의 전설에 의하면 그는 복사의 수호성인들 중의 한 사람으로, 소년다운 용기와 신앙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그에 관한 전설 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그가 살던 3세기 말경에 많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박해를 받았다. 한번은 미사가 끝난 후 신부가 감옥에 갇혀 있는 신자들이 성체를 모시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였으나, 아무도 감히 감옥까지 성체를 모시고 갈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가는 도중에 이교도들에게 붙잡혀 죽음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이때 어린 성 타르시키우스가 나서서 그 일을 자청하였다. 너무 어린 것을 걱정하는 신부에게 그는 자신이 어리기 때문에 경비병을 속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신부도 이 말에 동의하였다. 그래서 그는 성체를 모시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그런데 그는 감옥으로 가는 길에 친구들을 만났다. 그들은 성 타르시키우스에게 같이 놀자고 했지만 그는 급한 일이 있다며 거절하고 서둘러 가려 하였다. 그런데 한 친구가 그의 손에 있는 성체를 발견하고 빼앗으려 하자, 이를 거부하는 성 타르시키우스와 친구들 간에 싸움이 벌어지고 급기야는 친구들이 돌로 그를 쳤다. 이때 지나가던 군인이 다가오자 친구들은 도망갔고, 그는 온몸에 피를 흘리면서도 자신을 주교에게 데려다 줄 것을 부탁하여 주교에게 성체를 감옥에 갇혀 있는 신자들에게 전해 줄 것을 부탁하며 숨을 거두었다. 이 이야기는 영국의 추기경 와이즈먼(Wiseman)의 소설 "파비올라 혹은 카타콤바의 교회"(Fabiola or the Church of the Catacomb, 1854)의 소재가 되어 더욱 유명해졌다.
성 타르시키우스는 복사와 첫영성체하는 어린이들의 수호성인이다.

위의 내용이 나의 수호성인이신 성 타르시치오에 대한 이야기이다. 가톨릭 굳뉴스의 성인사전에서 가져온 것이며 인터넷 한글자료에서 찾을 수 있는 전부이다.
와이즈먼 추기경의 소설을 찾을 수 있으면 좋을텐데 사실 찾기가 좀 힘들다.

남들에게 내 본명을 소개할때면 항시 같은 질문이 따라온다...그분이 누구셔?...
그러면 바로 위의 내용을 간략 요점 정리해서 알려준다. 대부분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냥 그려려니 하면서 넘어가준다.

우스개 소리지만...미사가 끝난뒤 성당앞에서 '베드로 형님', '마태오 형님' 이렇게 부르면
최소한 열명이상의 사람이 뒤돌아본다. 그런면에서 타르치시오 성인이 좋다.

복자와 어린이의 수호 성인이신 타르시치오 성인...
웬지 더욱 정이 가는것 같으면서 내맘이 더욱 끌리는 성인이다.
아마 성인께서도 당신을 수호성인으로 삼은 내가 맘에 들지도 모를겠다.

군대에서 성당 다니던 이야기 3부

다들 안녕하시지요!
여러 형제자매님들의 열화같은 성원에 몸둘바를 몰라하고 있는 타르치시오입니다.
저에게 메일이 무려 열한통이나 왔습니다. 열통은 스팸이었습니다.
메일보내준 원식형제님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이따가 그 호프집으로 나와라.친구야....)
보잘것없는 글이지만 많이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작하기전에 부탁 말씀 하나 드리겠습니다.
글을 퍼오거나 퍼가는걸 즐겨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제 졸작들은 퍼가심을 자제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저작권 같은 어려운 문제때문이 아니라 다른 게시판으로 돌아다니게되면
제가 너무 부끄러워서 그렇습니다. 제글은 이곳 굿뉴스 자유게시판 전용입니다.
(전혀 퍼갈 마음이 없으시다구요.....^^;;)
그리고 배경무대가 어디냐는 질문을 상상하였는데 아무도 물어봐주시지 않던군요...
전혀 궁금하지 않으시나 봐요? 힌트를 드리자면 머나먼 남쪽 되겠습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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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성당 다니던 이야기 3

신부님의 편지를 가슴에 꼭 품고 반지를 만지작 거리면서 부대를 향해 출발한 용감한 일등병.
앞으로 어떤일이 닥칠지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하고 즐거운 마음에 룰루랄라 였습니다.
잠깐의 면담이 너무나도 힘이 되었지만 귀중한 시간 삼십분을 희생해야 되었던 것입니다.
부대가 보이는곳에 -버스를 갈아타야하는- 도착하니 이미 시간은 20여분밖에 안남아있었습니다.
다음 버스는 아홉시 정각....선택의 길은 오직 하나...
산중턱의 부대까지 가는 지름길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1년이상 근무한 사람들만이
급한일이 있을때 목숨 걸고 이용한다는 그 산길....깎아지른 절벽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바람도 많이 부는 바닷가 절벽의 바로 그 길....언젠가 전설처럼 탈영한 병사가 그길로 가다
지쳐서 부대로 돌아왔다는 그길이었습니다. (뻥이 심하지요.그래요...저 뻥쟁이입니다.)
불빛하나 없는 그 길을 땀을 삐질삐질 흘려가며 부대에 도착하니 아홉시에서 딱 2분 남았던군요.
신기록이었습니다. 아마 지금까지도 그 기록은 아무도 깨지 못했을겁니다. 군인정신.....
올라가면서 내내 고민했던것은 편지를 어떻게 보관하여야 들키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지요.
소중한 편지를 소홀히 보관할수도 없고 그렇다고 사물함에 넣어놓자니 누군가에게 들킬것도 같고...
그래서 생각해낸게 고향집으로 보내버리자는 거였습니다. 머리 좋은 저자신에게 흐뭇해하면서
부대에 들어선 저는 깐깐하기로 소문난 부대장에게 귀대신고를 하러갔습니다.
머리가 반쯤 벗겨진 대장은 자기방에서 열심히 티비를 시청하고 있더군요.
* 충성! 신고합니다. 어쩌구 저쩌구.......이에 신고합니다.....충성!....
- 잘 갔다왔냐? 일은 잘 처리하구?
* 네...그렇습니다...
- 근데 너 웬 땀을 그렇게 흘리나?
* 아닙니다. 뛰어와서 그렇습니다.
- 그으래 ?!...너 이리 와바...
* (헉...갑자기 이 아저씨가 왜 이러지...^^;;;)
저에게 다가온 대장은 갑자기 제 호주머니를 마구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편지를 조용히 감추고 싶었던 저의 작은 소망은 주님의 은총으로 깨지게 되었습니다.
편지를 손에 쥐고 앞뒤를 살펴보더니 자기 이름이 쓰여져있는걸 발견하고는 한마디 하더군요.
- 이게 무슨 편지냐?
* 네. 평소에 대장님을 흠모하는 제 마음을 적어 보았습니다. <--- 라고 하고 싶었습니다...
* 우물쭈물.....
편지를 꺼내들고 읽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저는 철조망에 매달리는 매미가 생각나기도 하고
유류고 뒷편에 굳건한 자태를 뽐내고있을 곡갱이 자루가 친근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다읽은 편지를 책상위에 내려놓더니 시선을 시끄럽게 떠들고있던 티비로 돌리면서
- 알았다. 그만 들어가봐라...
* 네. 충성!....

내무반에 돌아와서도 내내 걱정이었습니다. 뭐라고 말을 했으면 속이라도 편할텐데.
전혀 가타부타 말이 없이 돌려보냈으니 머리속으로 온갖 생각들이 지나갔습니다.
혹시나 고참을 호출하지는 않을까? 그려....분명 새벽녁에 몽땅 집합시켜서 한 따가리 할거야.
어쩔수없지뭐...내가 나쁜일을 한것두 아니구...에잉...잠이나 자자...
다음날. 불안한 마음에 눈을 뜨고 하루를 시작하였는데 웬걸...아무일없이 평상시처럼 지나갔습니다.
또 그다음날도...그리고 그 다음날도...그리고 금요일도 그렇게 폭풍속의 고요함처럼...
토요일 점심식사를 끝내고 열심히 설겆이를 하는 저에게 부대장실에서 호출이 왔습니다.
그럼 그렇지...토요일 오후에 뺑뺑이를 돌리는구나....
사무실에 들어가보니 서무를 보는 왕고참 하나만 남아있더군요.
* 충성! 용무있어 왔습니다.(빨리 끝내고 편히 쉬자.)
- 어~ 왔냐...근데 너 재주 좋다...
*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네?
- 대장이 너 종교 외출 보내주라고 결재 올리렌다.
* (엥?) 네?
- 그러니까~ 행선지가 어딘지 시간이 몇시부턴지 빨리 말해.
* 넵. 장소는 ??공소이고 시간은 저녁 이십시 삼십분부터입니다.
- 그럼...이십시부로 끊어 주면 되겠냐?
* 네. 감사합니다.
- 알았어. 이따 나가야되니 가서 준비하고 십구시 오십분에 신고하러 와라.
* 네. 알겠습니다. 충성! 용무마치고 돌아갑니다.
문을 나서는 저에게 한마디를 던지더군요.
- 토요일 저녁에 외출나가는 놈은 니가 처음이다. 행동 조심하고 똑바로 해라...
그리고 올때 나 담배 한갑 사다주구....

이렇게 해서 지금까지 유래가없던 토요일 저녁 한밤중에 종교 외출을 나가는 전설이 만들어졌습니다.
지금도 궁금한게 있는데 그때 그 신부님은 그 편지에 뭐라고 적으셨을까요?
혹시 성당 안보내주면 탈영할것 같으니 신경쓰라고 적으셨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편지 한장에 전례가 없던일을 성사시키게 만들었을까요?
한번도 소지품 검사를 안하던 사람이 어떻게 그날 밤은 호주머니를 뒤지게 했을까요?
이 모든게 주님의 은총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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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부터는 공소를 다니면서 있었던 일들을 중심으로 쓰겠습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군대에서 성당 다니던 이야기 2부

몇년전 가톨릭 굳뉴스 자유게시판에 올렸던 미완의 이야기입니다.
언젠가는 마무리를 해야된다고 생각은 하지만 쉽게 손이 가지 않는군요.
이곳 블로그에 올려놓고 반드시 마무리 지어야지요.

2부
너무나 게으른 타르치시오입니다.
뒷글을 올린다 올린다 하면서도 게으름을 피우다 이제야 올리네요.
회사내부에서도 복잡한 일들이 많아서 정신없었지만
퇴근하고 나서도 월드컵에 푹 빠져있다보니 여간 시간 내기가 어렵더군요.
그런다고 돌멩이를 집어드시는 분....앞으론 열심히 올려보겠으니 너그러이
용서해주시기를....

아래 좋은글을 올려주신 구본중님 보기가 부끄럽습니다.
님의 글이 삼류라면 저는 류자를 붙이기에도 부족할듯합니다.
그럼 성당을 드디어 다니게 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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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성당 다니던 이야기 2

지난번에 제가 있던곳의 환경은 대강 말씀드렸었지요...
그런 곳이다보니 성당에 가야 된다는 말을 간부나 고참들에게 꺼낼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가끔 혼자있는 시간이면 생각나는 기도문을 웅얼웅얼 외는게
전부였습니다. 그렇게 생활을 하던중에 삼개월정도 지나면서부터는 천금같은 기회가 왔습니다. 부대가 워낙 외지에 있는 곳이다 보니 한달에 두번정도 공문서 수령이나 기타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기 위해 가까운 시내로 외출할수있는 기회가 생긴것 이었습니다.
가깝다구 해봐야 걸어서 산길을 내려가 완행버스를 타고 10분, 거기서 직행으로 갈아타고
40분을 가야 제법 큰 도시가 나오지요.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당시에는 그랬습니다.
고참들 끝발에 밀려서 못가던 저도 드디어 기회가 오게됐습니다. 항시 빠지지않고 나가던
제 고참이 갑자기 누가 면회를 온다고 저한테 양보아닌 양보를 하게 됐던겁니다.
두근거리는 마음에 시골양반 서울가는 자세로 엉거주춤 시내로 나갔습니다.
저도 군대오기전에 수도꼭지에서 물 받아 먹던 사람인데 오랜만에 사람많은 곳에 가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더군요. 군대다녀오신 분들은 다들 아시겠지요...
눈썹을 휘달리며 맡은 일을 끝내고 보니 부대 복귀까지 딱 한시간이 남았습니다.
대한민국 어디서나 교회를 찾는 일은 너무나 쉽습니다. 고개들어 아무데나 보면 십자가가
보이니까요... 하지만 성당을 찾아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외지에서 성당을 찾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전화를 하는거지요. 순서대로 적자면
ㄱ. 가장 가까운 공중전화를 찾는다.
ㄴ. 일일사에 전화해서 교구청 번호를 묻는다.
ㄷ. 교구청에 전화해서 현재 위치를 말한다음 가장 가까운 성당을 추천받는다.
ㄷ. 즐거운 마음으로 룰루랄라 성당으로 간다.
성당에 도착해보니 공중전화에서 이십미터쯤 되는곳이더군요.
알고보니 교구청건물이 성당 바로 옆에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주교좌성당이었지요.
들어가보니 기도 드리시는 자매님 두분이 계셨습니다.
저도 제대에 인사드리고 앞자리에 앉아 평소에 못했던 밀린 기도를 열심히 드렸습니다.
이글을 읽으시는 분들중에도 그런 경험이 있으시겠지만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요.
얼마나 울었는지 나중에는 소리까지 내가면서 꺼이꺼이 하면서 울었답니다.
생각하면 웃기는 광경인데 덩치가 곰만한 대한민국 군인이 성당에 와서 소리내어 울고
있다는거...아마 거기있던 자매님들은 뭔가 큰 사고를 친 군인인줄 알았겠지요.
사실 제가 무슨 한 맺친것도 아니고 그런다고 슬픈일이 있는것도 아니었지만
웬지 마음이 그랬습니다.
그날은 그렇게 열심히 밀린 기도를 드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부대에 복귀하였습니다.
다음에 꼭 다시 오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그 뒤로 세번정도 그 성당을 찾아갔습니다. 매번 기도를 드릴때마다 눈물이 나오는것은
어쩔수없었습니다. 세번째로 성당을 방문하던날 저는 딱 걸렸습니다.
그날은 화요일이었는데 부대 행사 관계로 오후에 나와 복귀 시간이 저녁 9시로 많이 늦어져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성당에 도착했을때 어둑어둑 해가 지고 있었는데 나와보니 완전히
깜깜해있더군요. 급한 마음에 발걸음을 채촉할려는 그 순간....
성당 입구에서 누군가가 저를 불렀습니다.
"이보게~ 부대갈때 무얼 가지고 가나" <---- 이건 농담입니다.
검정옷을 입고있는 키가 큰 남자였습니다. 놀랬습니다.
자세히보니 사제복을 입으신 신부님이 저를 보고 계셨습니다.
잠시후 얼떨결에 집무실에 따라들어간 저는 신부님이 타주신 커피 한잔을 앞에 놓고 있었습니다. 솔직한 마음으로 많이 떨렸습니다. 이제 갓 햇병아리 군인인 제 신분으로는
미사를 안보내주는 부대에 있어서 이렇게 성당에 와서 기도한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그랬고
만약에 이일이 부대에 알려지면 괜한 불이익을 받을까 적지않아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신부님이 무거운 분위기를 깨며 말씀하셨습니다.
- 그래...미사는 잘 참석하나?
* 넹? 아닙니다. 상황이 좀 그래서 참석을 못하고 있습니다.
- 그러면 안되지. 미사는 꼭 참석해야지.
* 아~~ 네. 당연히 그래야되는데 부대가 어쩌고 저쩌고....공소가 어쩌고 저쩌고...
기타등등........
- 그래도 꼭 미사는 참석해야지...자네 부대장 이름이 뭔가?
* (허거덕..이러면 안되는데...말하면 큰일나겠다..) OO부대의 이 아무개입니다.
- 잠시만 기다리게...내가 부대장앞으로 편지를 한장 써주겠네..
* (편지? 흠..다행이군....그냥 받아서 안 갖다주면 되겠네...)
만약 편지를 부대장에게 갖다주면....저..제가 신부님한테 편지를 한장 받아 왔는데
이것 좀 봐 주시겠습니까?...그게 뭔데....저를 꼭 성당에 보내달라는 내용인데요..
흠.그래..가서 내부반장좀 불러와라...쫄병이 빠져가지고 성당에 다니고 싶다고
신부님한테 부대일을 고해바쳐....교육시켜바...너 일루 와바바...퍽..퍽..으악...
이제부터 너는 외출금지다...넹....흑흑흑 ....(자동 연상중)
음...이러면 안되겠군...그냥 영광으로 알고 아무도 모르게 해야지...
잠시후 달필로 부대장이름을 적은 편지 봉투를 하나 건네주시며
- 이거 꼭 부대장에게 전해주게...
* 네...알겠습니다.
- 그리고 자네 대대장도 이 성당에 다니니까 이번 주일에 내 꼭 이야기함세.
* (우잉~~ 내가 큰사고를 치겠는데) 네...감사합니다...신부님...
- 그리고 이건 묵주 반지인데 시간나는데로 묵주기도를 드리게...
* (눈물이 앞을 가리면서) 네...감사합니다...신부님...

이렇게해서 심장위 가슴 호주머니에 신부님의 편지를 간직하고 저는 부대를 향하여 출발하였습니다.

다음에도 꼭 읽어 주셔요....빨리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