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7월 1일 일요일

암의 치료


암은 여전히 두렵고 어려운 병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매년 10만여명의 암 환자가 발생하고, 6만5000여명이 사망한다. 의료보험이 적용된 치료비만 1조7000억원이 들고, 여기에 비급여 치료, 간호 비용, 노동력 손실 등 사회경제적 비용까지 합치면 그 비용은 2.5∼3배 이상으로 불어난다.

그러나 암 치료에 이렇게 큰 비용이 든다는 사실은 암이 이제는 '싸워 볼 만한 상대'가 됐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암 진단이 곧 시한부 선언이던 시절엔 돈 들일 만한 변변한 치료법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일찍만 발견하면 완치도 가능하다. 위암, 대장암, 유방암 등 대부분의 암을 1기에 발견하면 완치율이 90%를 웃돈다. 설령 환자 몸에 암이 남아 있더라도 꾸준히 약을 먹고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치료법도 속속 개발되고 있다. 쉽지는 않지만 지레 포기할 일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암 치료법은 크게 세 가지. 수술, 방사선, 그리고 항암제 치료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일찍 발견해서 암 덩어리와 주변 조직까지 깨끗이 도려내는 수술이다. 여기에 방사선치료나 항암요법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암 세포까지 뿌리째 뽑고 나면 완치다. 하지만 뒤늦게 암을 발견해 수술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조금 복잡해진다. 우선 방사선치료나 항암요법 등을 동원해 암 크기를 줄인 후 수술을 시도할 수 있고, 이미 암이 깊어 다른 곳까지 퍼진(전이·轉移) 경우에는 방사선치료, 항암요법과 함께 여러 치료법을 쓰면서 환자의 남은 삶을 관리하는 방향으로 치료 목표를 낮춰야 한다.




최근 속속 개발되고 있는 혁신 항암제는 말기암 환자에게도 삶을 연장시키고 그 삶의 질도 높일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있다. 정상세포는 그대로 두고 암세포만 골라 죽이는 '표적 항암제'가 부작용을 크게 줄인 이후, 이보다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된 '다중(多重) 표적 항암제'까지 나왔다. 다중표적항암제는 암세포만 갖고 있는 특징을 두 가지 이상 찾아내 이를 집중 공격함으로써 선택성과 치료 효과를 모두 높였다. 예를 들면 암에 산소와 영양을 공급하는 새로운 혈관이 자라나는 것을 억제하는 동시에, 암세포의 성장 신호도 차단하는 것이다.

이런 최신 항암제들은 암 치료의 개념을 바꿔 놓고 있다고 평가된다. 신촌세브란스병원 종양내과 정현철 교수는 "몸안에 암세포가 남아 있더라도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면 치료가 된 것으로 봐야 한다"면서 "고혈압이나 당뇨 환자가 꾸준히 약을 복용하며 일상을 유지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몸에서 암세포의 흔적까지 지워버리는 '완치'가 불가능하다면 '암을 몸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살 수 있게 한다'는 발상의 전환이다.






최근 속속 개발되고 있는 혁신 항암제는 말기암 환자에게도 삶을 연장시키고 그 삶의 질도 높일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있다. 정상세포는 그대로 두고 암세포만 골라 죽이는 '표적 항암제'가 부작용을 크게 줄인 이후, 이보다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된 '다중(多重) 표적 항암제'까지 나왔다. 다중표적항암제는 암세포만 갖고 있는 특징을 두 가지 이상 찾아내 이를 집중 공격함으로써 선택성과 치료 효과를 모두 높였다. 예를 들면 암에 산소와 영양을 공급하는 새로운 혈관이 자라나는 것을 억제하는 동시에, 암세포의 성장 신호도 차단하는 것이다.

이런 최신 항암제들은 암 치료의 개념을 바꿔 놓고 있다고 평가된다. 신촌세브란스병원 종양내과 정현철 교수는 "몸안에 암세포가 남아 있더라도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면 치료가 된 것으로 봐야 한다"면서 "고혈압이나 당뇨 환자가 꾸준히 약을 복용하며 일상을 유지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몸에서 암세포의 흔적까지 지워버리는 '완치'가 불가능하다면 '암을 몸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살 수 있게 한다'는 발상의 전환이다.





간암
간암 수술은 까다롭다. 암과 그 주변의 간 조직을 충분히 도려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간암 환자의 간은 이미 간경변 등에 걸려 그 기능이 떨어져 있으므로 필요한 만큼 충분히 절제하기가 어렵다. 만약 수술 후 남은 간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환자는 간 기능 저하로 인한 합병증으로 사망하게 될 위험이 높다. 간의 해독작용에 무리를 줄 수 있는 어떤 민간요법의 약이나 음식도 삼가야 하는 이유다.





이론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치료는 간 이식이다. 간경화나 간염에 걸렸거나 간 기능이 많이 떨어진 경우에도 이식수술을 통해 건강한 간으로 '갈아 끼우면' 된다. 문제는 간을 기증할 사람을 구해야 하고, 평생 면역억제제를 복용해야 하며, 치료비가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또 간염이 재발해 이식한 간까지 잃을 수도 있다. 이식한 간이나 다른 장기에 간암이 재발하는 확률은 20%에 이른다.

간암 치료에는 방사선치료나 항암요법보다 색전술, 고주파 열치료, 알코올 주입술 등이 더 널리 쓰인다. '간동맥 화학 색전술'은 항암제를 간동맥으로 직접 넣어 간암세포에 혈액을 공급하는 동맥 혈관을 막아버리는 방법이다. 암이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 받지 못해 굶어 죽는다. 전체 간암 환자의 30∼40%가 치료 대상이며 이 중 20∼40%가 효과를 본다. 10%는 5년 이상 생존 가능하다고 보고되고 있다.

'고주파 열치료'는 고주파를 이용해 발생하는 열로 간암을 파괴하는 치료법인데 큰 위험이 따르지 않는 안전한 방법이다. 초음파나 CT를 보면서 전극이 달린 바늘을 간암에 찔러 넣어 전류를 통하게 하면 순간적으로 발생하는 고열 때문에 암세포가 죽게 된다. 종양 크기 3㎝ 이하에서는 80∼90%, 3.5∼5㎝인 경우엔 50∼70%에서 암을 완전히 죽일 수 있다. 암 크기가 비교적 작은 경우에 쓸 수 있는 방법이다.

일본에서 많이 쓰기 시작한 '알코올 주입술'은 순도 100% 알코올을 간암 조직에 직접 주입하면 탈수작용이 일어나면서 암세포가 말라 죽게 되는 치료법이다.






(2)간동맥색전술

간동맥색전술은 암이 생존하기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산소를 공급하는 혈관을 인공적으로 막아 암으로의 산소공급을 차단함으로써 암을 질식시켜 없애는 치료법입니다.


구체적으로는 대퇴부(허벅지)와 몸의 연결부위에서 맥이 만져지는 곳(대퇴동맥)에 국소마취를 한 다음 카테터(플라스틱으로 된, 연필심 정도의 굵기인 관)를 통해


젤라틴 스폰지를 2, 3mm정도로 잘게 자른 것과 기타 여러 항암제를 주입하여 간동맥을 막아버립니다.


색전이란「마개를 닫아 막는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하면 산소를 함유한 혈액이 간동맥에서 간암으로 공급되지 않게 되므로 암이 질식사하게 됩니다.


간동맥을 막아버리면 간암뿐만 아니라 간장의 정상적인 부분도 질식사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하고 걱정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염려는 없습니다.


간장으로 혈액을 보내는 경로에는 지금 말씀 드린 심장에서 분배되는 혈액의 유통로인 「간동맥」외에도 장으로부터 오는 혈액의 유통로인 「문맥」이라는 또 하나의


혈액공급통로가 있습니다. 총 두 개의 통로가 있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간세포는 이 둘 모두로부터 산소를 공급을 받을 수 있는 반면, 간암세포는 「간동맥」이라는 통로를 통해서만 산소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인공적으로 젤라틴 스폰지로 간동맥을 색전하면 정상적인 간세포는 문맥으로부터 산소 공급을 받고 계속 생존할 수 있지만 간암세포는 산소부족에 의해 죽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간동맥색전술의 원리입니다.


이 치료법은 암의 진행 정도에 대해서는 거의 제한이 없기 때문에 적용범위가 넓어 많은 경우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단지 암세포가 문맥으로 침입하여 완전히 문맥혈류가


차단된 경우에는 위험하므로 시술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상태에까지 이르게 되면 생존할 수 있는 기간은 3, 4주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간동맥색전술은 시술이 가능한 간기능의 제한도 별로 없고 황달 또는 복수가 나타나지 않으면 시술이 가능합니다.


1회의 치료에 필요한 입원기간은 1주일 정도밖에 되지 않으며 부작용도 복통, 구역질, 식욕부진, 발열 등이 있기는 하지만


2, 3일만에 가라앉습니다.


퇴원 후 1주일 동안 자택에서 요양을 하면 사회복귀가 가능합니다. 이처럼 간동맥색전술은 다른 치료법에 비해 치료대상의 제한이 적고 장점이 많기 때문에, 최근의 간암


치료성과 향상에 가장 많이 기여하고 있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연명효과가 크기는 하지만, 완치율은 현재로서는 10%정도입니다.





항암약차

□ 직접 끓여먹는 항암약차 □

아래의 방법들은 민간요법으로 많이 이용되어오던 방법으로 몸안의 갖가지 독을 풀고더러운 것을 없애며, 체력을 크게 북돋우고, 항암효과가 높으면서도, 부작용이 전혀없으며,출혈,기침,복수차는것 등의 여러 부수적인 증상을 치료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고하여 많은 암환자들이 주로 사용하고있는 민간방법들로써 인터넷을 비롯하여 각종 전문서적등을 통하여 찾아낸 자료입니다.

▣ 직접 끊여먹는 항암약차

재료 : 느릅나무껍질100G + 겨우살이80G + 부처손 또는 바위손 50G + 천마 50G + 꾸지 뽕나무 50G + 산죽잎 50G + 으름덩굴 50G + 복령덩굴 50G + 짚신나물 50G + 백화사설초 50G + 오갈피나무 50G + 화살나무 50G + 삼백초 50 G + 생강10쪽 + 감초10쪽 + 대추 10개를 생수나 지하수를 이용하여 달인다. 재료는 약간의 가감을 하여도 괜찮다. 그러나 가급적이면 토종약초를 구하여야한다.

재료를 구하기가 어려우면 천문동,어성초, 광나무, 석창포, 바위솔, 마름열매 일엽초, 까마중 같은것들을 사용하여도 무방하다. 많은 약초를 다 사용하기도 하지만 몇가지 품목만으로 꾸준히 복용하면 좋다.

▣ 모든 암에 효과가 있다고 밝혀진 항암작용 토종약초들

1.벌나무 2.질경이 3.까마중 4.소리쟁이 5.조릿대 6.석이버섯 7.뱀딸기 8.가래나무껍질 9.상황버섯외에 다른 버섯류등 10.돈나물 11.살구씨 12.쇠비름 13.비파잎 14.간수, 오매 15.선학초<짚신나물> 패장초, 백모등, 전기황 16.천마 17.민들래 18..겨우살이 19.만병초 20.도마뱀 21.뱀탕 22.땡비<벌집> 23.감초,대추,생강등 24,모든 야생 나물들

▣ 간질환에 사용되는 약초 (간암,간경화,지방간,황달)

벌나무(산청목) ,지구자나무<헛개>과경,노나무,천마, 만병초,겨우살이,인진쑥, 흰민들레,익모초, 오소리쓸개,민물고동,굼뱅이등

▣ 위장질환에 사용되는 약초 (위염,위궤양,소화불량)


느릅나무<유근피> ,삽주뿌리(백출,창출) ,참옻나무 껍질


▣ 기관지,폐질환에 사용되는 약초 (독감,기침,해소,천식,기관지염,결핵)

곰보배추 ,산도라지 ,장생도라지 ,산더덕, 오미자,주목,은행, 보리수나무,잔대,맥문동등

▣ 신장,방광질환에 사용되는 약초 (신장염,방광염(오줌소태),부종)


옥수수수염 ,녹두 ,쥐눈이콩 ,질경이 ,붉은팥, 으름덩굴,인동덩굴,어성초,조릿대,참가시나무


▣ 뇌,정신질환에 사용되는 약초 (중풍,두통,신경쇠약,불면증,건망증,스트레스)

천마, 야국화(감국) ,석창포,복령,복신, 동향송근, 해방풍,거풍목,만병초

▣ 뼈,관절에 사용되는 약초 (요통,관절염,신경통,골절,골다공증)

홍화씨, 접골목 ,골담초, 목천료(다래,개다래) ,오갈피나무 , 엄나무 ,두충 ,위령선, 속단, 쇠무릅(우슬), 송절(소나무마디) , 호랑가시나무, 야생노루뼈,아카시아버섯,소리쟁이

▣ 남성질환에 사용되는 약초 (정력부족,음위증,발기부전,갱년기장애)

만병초,야관문,산수유,구기자 ,복분자 ,삼지구엽초(음양곽) 참마(산약),두충, 가시오가피, 말벌집

▣ 산후조리,산후풍에 사용되는 약초

생강나무, 잔대 ,오소리쓸개

▣ 여성질환에 사용되는 약초 (비만,변비,냉증,생리통)

함초, 지치(자초) ,삼백초, 천궁, 당귀 ,냉초, 만삼 ,노박덩굴, 생강나무 ,익모초, 삼백초, 돌복숭아,두충,향부자,흰접시꽃

▣ 보기약으로 사용되는 약초 (피로증,식욕부진,다한증)


산삼, 가시오갈피 ,천삼등


▣ 당뇨병에 사용되는 약초

조릿대 ,갈근,갈화, 산뽕나무뿌리,하눌타리열매 ,소나무뿌리, 가시오갈피어린순,천삼,굼뱅이,석룡자등


▣ 각종암에 사용되는 약초 (간암,위암,폐암 등)

■벌나무(간암) ■참나무겨우살이(위,신장,폐암) ■느릅나무 ■지치(위암,자궁암) ■와송 ■꾸지뽕나무(자궁암) ■광나무 ■부처손,바위손(폐,간,위,자궁,피부,식도암) ■녹나무(각종암) ■번행초(위암) ■까마중 ■비단풀 ■상황버섯(각종암) ■차가버섯(위암) ■말굽버섯(식도,위,자궁암) ■덕다리버섯(유암,전립선암)
■운지버섯(간암,폐암,유암,소화기계암) ■영지버섯 ■석이버섯(말기암 통증완하) ■동충하초(대장암)


▣ 기타 질병에 사용되는 약초


■동백나무겨우살이(신부전증) ■하수오 ■산작약 ■생지황 ■만병초(백납) ■개다래(통풍) ■오이풀(화상) ■참가시나무(결석) ■토복령 ■오배자(설사) ■백년초 ■약쑥(3년이상) ■일엽초<이뇨작용> ■한련초(흰머리) ■도꼬마리(축농증)) ■찔레버섯(경기,간질)

▣ 암으로 인한 복수 제거에

등대풀을 바싹 말려낸 가루를 대추살로 반죽해 엄지손가락 마다만한 환을 지어 하루 두 번 한 번에 2알씩 뜨거운 물에 풀어서 먹는다. 또 용규(까마중)를 젖은 것은 600g, 마른 것은 160g을 하루분으로 하여 물로푹 달여 먹는다. 직장암, 방광암, 간암, 위암 등 거의 모든 암에 다른 항암약초와 함께 쓰면 효과를 볼 수 있다. 그외에 붉은팥,금은화<인동덩굴>,으름덩굴<목통>,벌나무,어성초,참가시나무,개머루등

▣ 말기 암의 통증 해소에

빙편(용뇌) 50g을 술 500㎖에 넣고 녹인 다음 쓴다. 이 약은 암이 전이되어 극심하게 아픈 부위에 바르되 처음에는 하루에 10번 이상 바르고 후에 동통이 덜해지면 하루에 몇 번만 바른다. 바를 때 종양이 터진 곳에는 바르지 말아야 한다. 임상실험에 의하면 식도암, 위암, 골전이암 등으로 통증이 극심한 40명의 환자에게 썼는데 모두 진통효과가 훌륭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외에 만병초,천마등이 있다.

▣ 암으로 열이 나고 아픈데

인동<금은화>의 줄기 200g을 나무망치로 짓찧어 감초 40g과 질그릇에 함께 넣고 물 두 사발을 부어 약한 불에 끓여 반이 되면 다시 맑은 술 한사발을 부어 끓인 다음 짜서 세번에 나누어 하루에 먹는다. 병세가 심한 경우는 하루에 두 번 끓여 먹으면 대소변이 시원하게 통하면서 효험을 본다.

암환자를 위한 건강식


 

■ 야채스프 만들기

(1) 재 료

▷무 우 : 4분의 1개 ▷무우청 : 4분의 1개분 (무우의 잎과 줄기 2~3개)
▷당 근 : 2분의 1개 ▷표고버섯 : 1장 (자연건조한 것)
▷우 엉 : 4분의 1개(작은 것은 2분의 1개)


※크기는 중요하지 않으며 보통크기 기준

(2) 만드는 방법

① 야채를 물로 씻어서 큼직 큼직하게 썰을 것
② 야채를 많이 넣지말고 기본 분량을 꼭 지킬 것.

③ 모든 야채 재료의 양(부피)에 3배의 물을 붓고 쎈불로 끓인 후 약한 불로 60분 정도 달인다.
④ 끓이는 기구는 스텐, 알미늄, 유리그릇을 사용. (테프론, 법랑 용기는 사용하지 말 것)

⑤ 보존 용기는 유리병이나 사기그릇을 사용할 것.
■ 현미차 만들기

1. 재료
현미 : 200cc(한컵) 물 1500cc(약7~8컵정도)

2. 만드는 방법

① 현미를 짙은 갈색이 되도록 볶는다. (기름기 없는 용기 사용)
②1500cc의 물을 다른 용기에서 센불로 끓인다. 끓으면 현미를 넣고 불을 끈다.

③ 5분쯤 후에 채에 받치어 낸 물이 1번 차이다.

④ 채에 걸러진 현미를 다른 용기에 넣고, 새로은 물 8홉을 부어 센불로 끓인 후 약한 불로 5-10분간 끓여서, 채에 받쳐 낸 물이 2번 차이다.

⑤ 1번 차와 2번 차를 혼합하여 보관, 사용한다. (용기는 유리병, 사기그릇을 사용할 것)

3. 복용방법

(1) 식전에 야채스프를 먹고 식후 15~30분 쯤 후에 현미차를 마신다. 다른 시간에는 수시로, 야채 스프를 먼저 먹고 15-30분의 간격을 두었다가 현미차를 마신다.

(2) 스프와 현미차는 절대로 같은 시간에 복용하지 말 것. 효과가 반감되므로 15분이상 간격을 두고 마실 것.

(3) 야채스프나 현미차는 1회에 한컵 정도 (약, 180cc) 를 마신다.


(4)소변요법을 같이하면 더욱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소변은 생각처럼 불결하지 않으며 스프와 섞어서 마시면 냄새나 맛을 느끼지 못한다
아침에 일어나 맨처음 소변을 받되 처음 것은 버리고 중간 것 부터 약 한컵(180cc)을 받는다
스프 120cc와 소변 60cc를 섞어서 공복에 마시는데 이와같이 하루 3회 마신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비방으로 놀라운 효과를 보는 경우가 많이 있으므로 암환자는 주저말고 꼭 해야 한다

4. 주의사항

(1) 야채스프가 체내에 들어가면 화학 변화를 일으켜서 30여종 이상의 항생물질들을 만들어 내게 된다.

(2) 신장병이나 통풍이 있는 사람은 현미차는 조금부터 시작하여 상태를 보아가며 마셔야 한다
부종이 있는 경우에는 현미차는 마시지 않는다

(3) 아토피성 피부염을 앓고 있는 사람이나, 장기적으로 약을 투약해 오던 사람, 특히 병증이 심한 사람은 스프의 양을 소량으로 시작하여 차차로 양을 늘려간다.

(4) 폐암이나 결핵 등 질병 또는 병력이 있는 사람으로 기침이 많이 나오는 경우에는 2~3일간 진해제를 먼저 복용하여 진해를 시킨 후 먹는 것이 좋다

(5) 스프와 현미차를 만들때 사용하는 물은 6각수를 사용해야 효과를 극대화 시킬 수 있다
6각수는 그쪽 홈을 참고 하세요 http://sixwater.com

(6) 효과는 사람에 따라 다르나 보통 한달 이후 부터 서서히 그러나 강력하게 나타나게 되므로 꾸준히 계속해야 한다

(7)아침 기상후 스프를 마시고 약15~30여분 후에 현미차를 마시고 나서 약15~ 30분후에 다른 음식을 먹어야 한다

하루에 3~5회 이와같이 반복하여 마신다

(8)복수가 차는 사람은 현미차는 마시지 않아야 하며 스프도 양을 조절해야 한다

5. 복용후 일어나는 신체적 증상 및 변화

(1) 어떠한 질병이라도 체온이 한 번은 내려간다. 그런 후에는 감기도 잘 안걸리고 열성질병에는 걱정이 없어진다.

(2) 전신 또는 안면이나 수족에 발진이 생기거나 가려울 수도 있으니 식용유나 안티플라민을 바르면 된다.

(3) 한달 가까이 복용하면 누구에게서나 체중이 2~3 Kg 정도 빠지게 된다.

특히, 지방질이 많은 분에게는 더 많은 감량이 되나 몸에 해로운 지방질이 나가는 것이므로 걱정 할 필요가 없다

(4) 안과적 증상은 누구에게나 나타난다.
시야가 흐려지거나 눈 가장자리가 가렵게 되는데 2~3일 후면 정상으로 되돌아 온다

(5) 뇌혈관 장애나 두부 외상이 있는 사람은 2~3 일간 두통이 온다.
특히 머리에 심한 통증이 있으나, 3~4일 경과하면 소멸된다.

(6) 고혈압 환자는 3일째 부터는 혈압 강하제를 줄여서 복용하고 30일 후엔 복용을 중단하도록 해야 한다.

쾌변에 신경을 쓰면서 잘 관찰하면, 한달이면 혈압이 정상으로 될 것이다. 갑자기 혈압 강하제를 중단하면 쇼크 등이 일어날수 있으니 주의를 바란다.

(7) 부인과 병종이 있는 사람은 스프를 먹기 시작하면 허리가 묵직한 감이 있고, 대하가 많아 질 수도 있다. 3~4일 경과하면 제반 증상이 없어진다.

(8) 여성은 연령에 관계없이 다시 생리가 시작되는 사람이 많다.

젊은 여성의 경우 4~5개월 복용 후 부터는 새로운 생리 주기가 형성되느라 한달에 두 번 올 수도 있다. 그후부터는 정상 주기가 되니 염려할 것은 없다.

(9) 종양으로 복수가 차오르거나 통증이 있는 경우에 치료에 최고의 조건을 만들어 주게 되므로 현저하게 빨리 치유가 된다.

(11) 현미차는 암환자 뿐 아니라 당뇨병 환자의 인슐린 분비를 증가시켜 주며 이뇨작용이 현저히 좋아진다.

3~5일째부터는 체내의 독소가 배출되어 소변이 맑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12)항암치료로 인한 탈모나 다른 탈모 환자도 복용 6~12개월이 되면 머리카락이 5,000~ 10,000 본이 더 돋아 나고, 손톱, 발톱, 모발은 연령에 관계없이 보통 때 보다 3배 이상 더 빨리 자란다.

(13) 암에 걸렸었거나 중병이 아닌 사람들은 스프와 현미차를 4~6 개월 정도 복용하고 그후 부터는 잊어 버리지 않을 정도로 복용하면,평생을 다른 병에 걸리지 않는다.

이외에도 부작용과 같은 일시적인 증상이 나타날 수 있으나 이것은 부작용이 아니라 호전반응(好轉反應)이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호전반응이란 질병이 치유되어 갈 때 일시적으로 악화되는 것 같은 증상을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2007년 6월 24일 일요일

Get on the boat ......

Get on the boat, do your job, get back home again....

2007년 6월 22일 금요일

내 모니터는 어떤 상태일까요? (펌)



모니터 밝기 조절할때 유용하게 쓰세요.

9~0까지 모든 숫자가 보인다면 - 모니터가 비정상적인 출력으로 눈이 아픈 상태.
3~4까지 보인다면 곧 교체해야 할 모니터.
7~8까지 보인다면 정상이라네요.

2007년 6월 21일 목요일

무라카미 하루키 인터뷰 기사

*어딘가의 블로그에 있기에 떠왔습니다. 양해해주시기를...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미 완성한 소설은 다시 들춰보지 않는다고 했다. 전세계적을오 6백만부 팔린 '상실의 시대'도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은 '해변의카프카'도 마지막 문장에 마침표를 찍음과 동시에 전부 과거가 된다. 그에게 중요한 건 언제나 다음 문장이다. 하지만 우리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그가 모두 궁금했다. 숫기 없는 말투에 조용한 목소리 편안한 진과 해진 라운드티셔츠, 달리기와 고양이. 미국의 TV시리즈 로스트와 빌리홀리데이 그리고 무엇보다 글쓰기. 하와이에서 만난 하루키의 단어들은 그런 모습이었다.

2003년 10월 17일 3시 30분, 하와이 대학의 연구실. 문은 활짝 열려있었다. 방 한가운데 고흐의 그림에나 나올 법한 작고 오래된 나무 의자에 앉아있는 그의 옆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의자에 엉덩이를 반쯤 걸치고 두 다리는 1미터쯤 떨어져 있는 또 다른 의자에 걸쳐 놓은 채 고개만 약간 돌려 방문자의 존재를 확인했다. 무표정한 얼굴을 한 그의 왼손에는 작은 페이퍼백 영문 서적이 들려있었다. 연구실의 두 벽은 책으로 가득했고 책상 옆에는 자전거가 한 대 서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메일을 통해 미안하지만 두번은 곤란하고 한 차례 두시간 정도라면 인터뷰 하고싶다고 했던 9월 19일부터 정확히 28일이 지난 날이었다.


자전거 타시나봐요?

지금 머물고 있는 집이 캠퍼스에서 10분이면 닿을 거리게 있거든요. 학교 올 일이 있을 때마다 자전거를 타요.

어제 하와이 전체가 흔들렸어요. 지진 때문에 많이 놀라셨죠?

일본에선 지진이 많이 일어나지만 하와이에선 생각도 못했던 일이라 놀랐어요.

고베에서 자랐으면 지진을 많이 겪으셨을 것 같은데요.

제가 자라던 때에는 고베에 지진이 많진 않았어요. 지진으로 유명한 고베에서도 그런 일이 없었는데 믿고만 있던 하와이가 흔들려서 글 쓰다가 아니 이게 무슨일인가 싶었죠.

미스터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상, 하루키상 어떤이름이 편하세요?

어떤거라도 좋지만 일본에선 대부분 저를 하루키상이라고 불러요. 아시겠지만 일본엔 나말고도 유명한 무라카미가 한 명 더 있잖아요.

그럼 저도 하루키상으로 부를게요. 하와이에는 언제 무슨 일로 오셨어요?

하와이 대학의 초청으로 8월에 왔어요. 강의는 하지 않아도 되지만 특별강좌는 몇 번 할 것 같아요. 그 동안 문학관련수업에 몇번 초빙강사로 들어갔는데 학생들이 정말 기발하고 요상한 질문을 많이 하더라고요. 하와이에는 아마 내년 여름까지 그러니까 1년쯤 있다가 일본으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하와이에 온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죠? '댄스댄스댄스'에 묘사된 하와이를 보고 분명 와봤으리라 생각했어요.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그렇게 세심하고 정확하게 묘사할 순 없을 테니까요.

처음 온 것이 20년 전쯤인가 그럴 거예요. 그 후로 자주 와서 친구도 몇몇 있어요. 하지만 이렇게 긴시간 오아후에 머무는 건 처음이죠. 전 하와이 섬 중에서 카우아이를 가장 좋아하거든요. 얼마나 좋은지 집 까지 샀을 정도니까요. 조용하고 평화롭고 무엇을 쓰든 집중이 잘 되요. 그래서 3~4년전에 카우아이에 두 세달 머물면서 '해변의 카프카'의 반을 썼어요, 세달은 카우아이, 나머지 세달은 도쿄에서 썼지요.

이번에 하와이에 계시는 동안 어떤 계획이 있나요? 역시 소설을 쓰는 건가요?

네. 좋은 소설을 쓰는 것.

구상중인 소설이 있나요?

일단 지금은 휴식을 좀 취하고 12월쯤 다음 소설에 착수 할 생각인데, 딱히 구상중인 건 없어요. 항상 전 백지상태에서 소설을 시작해요. 이런 걸 써야겠다, 하면 부담이 되거든요. 필요한 건 첫 장면 하나에요. 하지만 그 장면은 굉장히 구체적이고, 생생해야 하며, 명확한 것이라야 해요. 캐릭터도 스토리도 일ㅇ체 정해두지 않지만 확실한 첫 장면만 있으면 자신감이 생겨요. 잘 끝낼 수 있겠다 하는.

그럼 '태엽 감는 새'도 스파게티를 욜이하는 남자라는 첫 장면으로 쓰기 시작하신 건가요?

네. 그때 제 머릿속에는 오로지 하나, 스파게티를 욜이하는 남자 모습만 있었어요. 다음에 어떤 일이 있을지는 저도 몰랐어요. 그냥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이렇게 설명을 해보죠. 저기 저 멀리 점 하나를 찍고 거기까지 달려가기로 해요. 달리는 중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나도 몰라요. 잘 쓰여진 책이 재미있는 이유는 결말을 모르기 때문이잖아요. 저도 똑같아요. 다음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까 궁금하고, 궁금하니까 흥미진진하고, 흥미진진하니까 계속 쓰게돼요.

당신 소설에 나오는 캐릭터는 하나같이 개성이 뚜렷합니다. 스토리도 결말도 없이 그렇게 독특한 캐릭터들은 어떻게 만들어지나요.

나는 캐릭터를 창조하지 않아요. 대신 전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해요. 내 머릿속엔 일종의 캐릭터서랍장 같은 것이 있어서 관찰로 얻은 사람들의 구체적인 이미지를 그곳에 보관해요. 사람은 미스터리에요. 관찰하면 할수록 더 흥미로워요. 할 수만 있다면 집까지 따라가서 보고싶어요. 어떤 책을 보고 어떤 옷을 입는지 누구와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그렇게 하나의 캐릭터가 완성되면 내 머릿속 서랍장에 차곡차곡 넣어두고 필요할 때 마다 꺼내요. 그리고 소설을 쓰면서 캐릭터가 필요할 때 나는 어떤 서랍을 열어야 할 지 아는거죠.

그렇다면 하루키상은 특별한 사람입니까?

저는 스스로를 평범하지 않은 능력을 가진 평범한 사람이라고 정의해요. 책상에 앉아 글을 쓸 때는 난 특별하구나 생각하지만 글을 쓰지 않을 땐, 이렇게 마주앉아 이야기를 할 땐 지나치게 평범해요.

독자들에겐 평범하지 않아 보이는 건 확실해요. 그들은 당신의 소설 뿐 아니라 라이프스타일까지 선망하고 추구합니다. 재즈, 미국 하드보일드 소설, 고양이, 영화, 하루키상이 좋아하는 요리까지요. 당신의 소설 속 문화 아이콘이 상품화 되는 이런 현상은 어떻게 받아들이시나요?

그런 얘기를 종종 듣는데 사실 별 관심은 없어요. 하나의 소설을 완성하고 나면 다음에는 깨끗이 잊으니까 그 주변적인 것들도 저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게 되죠. 난 그냥 글 쓰는 것을 즐길 뿐이에요. 사람들이 그걸 즐기면 좋은거고 아니면 아닌거고. 게다가 난 이렇게 유명한 작가가 되고 싶었던 적은 한번도 없었어요. 전 조용하고 평화로운 나날이 좋거든요. 책을 쓰는게 좋고 소설을 쓰는 건 좋지만 유명한 소설가가 되는건 바람이 아니었어요. 알아보는 사람없이 자유롭게 도시를 활보하고 싶어요. 그래서 내 원칙이 제 얼굴이 알려질 만한 일들 특히 TV출연을 하지 않는거에요.

신주쿠나 하라주쿠 같은곳을 거닐 때도 알아보는 이들이 별로 없나요?

네. 다행히 그간 꾸준히 노력한 결과! 도쿄 한가운데를 걸어도 알아보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신문은 어떤가요? 일본의 신문도 소설가와 페미니스트, 소설가와 정치인같은 구조로 토론이나 논쟁 같은것을 붙이기 좋아하지 않나요?

그렇긴 한데, 방법은 의외로 간단해요. 그냥 고개를 돌리면 돼요. 아무 토론도 안 한다고 하면 되죠. 난 독립적인 개인으로 어떤 그룹에도 어떤 사회에도 속하고 싶지 않아요. 문학계도 싫어요. 작가친구도 만들지 않죠. 제 친구들은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에요. 열띤 비평이나 날 선 토론보다는 음악, 고양이, 이런 얘길 하는게 더 좋아요. 전 사교적인 사람도 아니고 모든 이에게 다 친절하지도 않아요. 내가 사는 세계는 아주 한정된 공간이에요. 숙고 끝에 곁에 둘 사람들을 고르고 그들에게만 최선을 다해요.

소설가중에는 정치, 사회적으로 분명한 노석을 정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도 많은데요. 당신은 어떤가요?

인터뷰를 하다보면 정치적 견해를 묻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 질문엔 대답을 하지 않는 편이에요. 물론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한 개인으로서 내 나름의 의견과 입장은 있지만 그걸 공론화 하는 건 싫어요. 스토리텔러는 견해를 밝히는 사람이 아니라 동의를 끌어낼 수 있는 스토리를 쓰는 사람이니까요. 말을 훌륭하게 잘 하는 능력을 간춘 사람들이 있지만 난 그렇지 못하니까. 대신 전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30대에 쓰신 한 에세이에서 마흔 살이라는 나이는 인생살이에서 꽤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고비인 것 같다고 하셨죠. 그래서 더 이상 이런 소설은 쓸 수 없을 것이다. 라고 할 말한 작품을 써놓고 싶다고요.

기억해요. 아마 '상실의 시대'가 그런 책이었던 것 같아요. 서른 여덞쯤에 썼으니까.

한국에선 당신이 일본 작가로는 유례없는 인기를 얻게 된 데도 '상실의 시대'가 큰 역할을 했죠. 그 책을 읽고 있는 청순한 여자가 나오는 휴대폰 광고도 있었고, 하루키체로 통하는 문체가 유형처럼 번지기도 했습니다. '상실의 시대'가 없었다면 지금의 당신도 없었을까요?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에요. 2백만부가 팔렸대요. 일본 밖으로 제 이름이 알려지게 된 데에는 '상실의 시대'의 역할이 크죠.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상실의 시대'는 제 작가인생에서 일종의 디딤돌 같은 역할을 한 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당신의 소설중 가장 많이 읽힌 책인 만큼 작품성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죠. 특히 기존 일본 소설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독특한 섹스신에 대해서는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한 설정일 뿐이라는 비판도 많지요.

그게 참 묘한게, 제가 그 소설을 쓰기 전에는 평론가들이 하루키의 책에는 섹스나 죽음 등에 대한 묘사가 없다고 엄청나게 공격했어요. 그래서 이걸 쓸 때는 좋다, 내가 이 책에선 성 묘사와 죽음을 제대로 다뤄보리라 생각했어요. 도전이었죠.

소설을 쓸 때마다 그런 과제나 목표치를 정하세요?

어느 소설을 쓸때나 마찬가지에요. '태엽 감는 새' 에서는 스키닝을 묘사했는데 그때도 독자들의 항의 전화를 엄청 받았어요. "대체 왜!왜!왜! 하루키상은 어쩌자고 그런 역겨운 묘사를 하는겁니까?"라고요. 그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잔인하고 폭력적인 묘사를 생생하게 써 보자는것이 도전이었죠. 스스로에게 던진 임무랄까. 운동하는 것과 같아요. 이번 달은 오른팔 근육, 다음달은 허벅지 근육, 다음달엔 어깨, 이런식으로요.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이나 '어둠의 저편'의 섹스신을 떠올려보면 당신은 이제 섹스신 묘사에는 통달한 게 틀림없어 보입니다만

하하. 그렇습니까? 많은 독자들이 내가 그런 묘사를 쓰는 걸 아주 즐긴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저도 쓸 때는 참 민망하고 부끄럽고 어쩔 줄을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말하죠. 하루키, 이건 네 일이야! 멈추면 안돼!

'상실의 시대'가 잘 될 거라는 느낌 같은것이 있었나요?

아뇨, 정말 몰랐어요. 처음엔 단편으로 쓸 생각이었는데 쓸수록 계속 두꺼워지더니 또 그렇게 저절로 베스트셀러도 됐어요. 이야이가 진행될수록 캐릭터가 살아서 움직였어요. 미도리는 미도리대로 와타나베는 와타나베대로, 그들의 의도와 의지가 있었죠. 그래서 내 마음대로 중간에 멈춰버릴 수가 없었어요.

스무 살의 와타나베와 스무 살의 당신, 오버랩되는 부분이 많나요?

아닌 것 같아요. 우선 내 주변엔 와타나베처럼 여자들이 많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비슷한 것도 있어요. 수줍던 20대, 진실을 구하고자 고군분투 했던 거나 삶을 향한 진지한 자세 같은 것.

전 세계적으로 6백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베스트셀러를 쓴 후 얻은 것과 잃은 것은 무엇인가요.

글쎄요. '상실의 시대'는 분명 잘 쓴 소설인 것은 맞아요. 많은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좋아해준다는 건 멋진 일이니까요. 사람들은 모두들 러브스토리를 좋아해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상실의 시대'는 사실 내 스타일의 문학은 아니에요. 그래서 사람들이 이걸 나의 대표작이라고, 내가 쓴 최고의 책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언제부터 그런 염려는 하게 됐어요. 사실이 그렇지 않으니까. '상실의 시대'는 전형적인 리얼리즘 소설인데 전 스스로를 리얼리즘작가라고 생각지 않거든요. 내게 '상실의 시대'는 일종의 도전같은 거였어요. 나도 리얼리즘 소설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럼 어떤 소설들이 하루키 스타일의 문학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해변의 카프카' '태엽 감는 새' 같은 포스트모던을 추구하는 작품이죠.

리얼리즘과 정 반대선상에 있는 그런 소설을 통해 당신이 구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전 독자들을 상상과 비현실의 세계로 안내하고 싶어요. 내가 제시하는 비현실의 세계를 읽으면서 그걸 현실의 일부로 느꼈으면 해요.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그런 비현실의 세상이 존재한다고 믿어요. 제 책을 통해 사람들이 그런 비현실의 세상을 바라보고 즐길 수 있다면 좋겠어요.

한국에는 당신이 바라표한 80여권의 책 중 번역본은 제외한 대부분의 주요작품, 약 50여권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 중 많은 책의 저자 소개 페이지에는 큼지막한 글씨로 "담담한 문체로 현대사회의 소외된 인간상을 그리는 세계적인 작가"라고 하루키상을 소개하고 있죠. 맞는 설명인가요?

그들이 그렇다면 그런거죠(웃음)

직접 저자소개를 쓰게 된다면, 어떻게 표현하시겠어요?

음, 제가 쓰고 싶은 건 한가지에요. 사람 난 그들을 '내 사람들'이라고 불러요. 제 주변의 사람들에 관한 것. 일반적인 사람들에 관한 거죠. 그들이 어떻게 태어나고, 어떻게 사랑하는지.

그럼, 사람에 관해 이야기하는 세계적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하하, 좋은걸요? 그런데 정말 제가 80권이나 되는 책을 썼나요?

모르셨어요?

몰랐어요. 이미 완성한 소설에는 관심이 없어요. 2년이 넘게 걸린 장편도, 닷새만에 완성한 단편들도, 다시 보지 않아요. 출판되면 잊어요. 문장과 캐릭터, 스토리 모두 빨리 잊고 새 작품을 쓰고 싶으니까요. 가끔 옛 작품에 대해 "이런 부분이 참 좋았습니다" 하는 분들을 만나면 전 "아 그렇습니까?" 하고 말하긴 하지만 실은 기억을 못해 미안할 때가 많아요.


만약 누군가 한정된 시간에 당신과 당신의 작품을 알고 싶다고 한다면 그 많은 책 중에 어떤 작품을 권하시겠어요?

음, 어려운 질문이에요. 난 벌써 27년째 글을 쓰고 있잖아요. 긴 시간이죠. 시간대별로 작품의 성격이 달라요. 첫 10년, 다음 10년 그렇게 블록으로 나눌 수 있어요. 굳이 뽑아보라면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상실의 시대' '태엽 감는 새' '해변의 카프카' 정도를 말하겠어요. 가장 많은 에너지를 쏟은 작품이니까요. 한 번도 다시 읽은 적은 없지만 이들 작품은 지금도 구석구석까지 잘 기억하고 있어요. 공을 많이 들였쬬. 단편은 닷새에서 일주일 정도면 끝나는데, 그래서 그런지 오랫동안 기억에 남지 않아요.

혹시 기억할 지 모르겠습니다만,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정말 첫번째 소설이었나요? 그 전의 습작기는 어땠나요.

네. 정말 그게 내 생애 첫 소설이었어요.

첫 번째 독자는 누구였나요?

제 아내요. 아내는 기억을 못한닫고 하지만(웃음) 그때도 지금도 전 항상 책을 출판하기 전에 단 한 사람, 아내에게 의견을 구해요. 그녀는 굉장히 예리한 평론가예요.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죠. 좋은 조언을 많이 줘요.

아내는 어떤 작품을 가장 좋아하던가요?

'어둠의 저편'과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에서는 불륜을 다뤘는데도요?

그러게 말이에요.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굉장히 좋아했어요. 그리고 며칠간 너무 친절히 대해줬어요. 맛있는 것도 매일 만들어주고.

첫번째 독자는 여전히 같지만 많은 것들이 변했겠죠. 데뷔작을 쓰던 74년의 하루키상과 지금 2006년의 당신은 어떻게 다른가요.

그때보다 지금은 더 나은 스토리텔러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요. 그땐 못쓸 것 같은 것들이 많았거든요. 이건 이래서 안되고 저건 저래서 안되고 등등. 섹스신, 폭력신 막 도망다녔어요. 그런데 요즘은 무엇에 대해서라도 쓸 수 있을거라는 자신감이 있어요. 행복한 일이죠.

그간의 작품 중에서 가장 힘들게 쓴 작품을 꼽으라면 어떤 걸까요?

다행히 저는 집중력이 강한 편이어서 힘을 많이 들여 글을 쓰는 편은 아니지만 그 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라면 '태엽 감는 새' 인 것 같아요. 우선 그때 개인적으로 좀 바빴어요. 당시 대학에서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수업준비를 하느라고 바빴어요. 소설 자체의 요인도 있었어요. 전 소설마다 목표가 있다고 했죠? 그런데 '태엽 감는 새'에는 특히 그 목표가 여러 개 있었죠.

팔 근육과 어깨, 배 근육까지 다 단련해야 하셨겠네요.

그렇죠. 그거 다 단단하게 만드느라 3년이 걸렸어요.

결과에는 만족하세요?

그런대로. 내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 책이 되었으니까요.

근육을 단단하게 한 덕분에 퇴고에 걸리는 시간은 좀 줄어들었나요?

음, 그건 아니에요. '해변의 카프카'는 초고가 6개월 걸렸는데 퇴고에 1년이 걸렸어요. 첫 장 부터 끝장까지 대 여섯 번을 고치고 또 고쳤으니까. 6개월간 초고를 쓰면 10개월은 원고를 손 보는 데 보내요.

인세는 달라졌겠죠?! 오른 인세 덕분에 부자가 됐나요?

돈 말하는 거죠? 맞아요. 꽤 올랐어요. 그런데, 믿지 않을 지 모르겠지만 난 돈에 욕심이 없어요. 이런 평범한 옷과 자전거, 시계만 있으면 돼요. 이유 없이 비싼 건 좋아하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아요.

그럼 대체 그 많은 돈으로는 무얼 하시나요?

자유. 자유를 사고, 내 시간을 사요. 그게 가장 비싼 거죠. 인세 덕에 돈을 벌 필요는 없게 됐으니 자유를 얻게 됐고 그래서 글 쓰는 것만 할 수 있게 됐죠. 내겐 자유가 가장 중요해요.

자유를 얻은 대신 스트레스 또한 덤으로 받았을 것 같습니다. 잘 팔리는 작가라는 것, 쉽게 읽히는 소설이라는 것은 행복한 일이지만 스트레스가 되진 않나요? 문학의 위엄에 대한 일반적인 편견이 존재하잖아요.

편견은 편견일 뿐이에요. 나는 되도록 쉬운 단어로 가벼운 문장 안에 심오한 스토리를 담아내고 싶어요. 어려운 단어를 조잡하게 조합해 어려운 문장을 만들었는데 스토리는 텅 비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비극이에요, 그건. 그 보다 비참한 건 세상에 없어요. 복잡하고 어려운 단어를 써야만 역작을 쓸 수 있는 건 아니지요.

새 책 한 권 내실때마다 동시다발적으로 엄청나게 많은 평론이 쏟아집니다. 그 많은 평론이 하루키상을 공정히 평가한다고 보세요?

난 평론은 읽지 않아요. 일본의 평론가들은 내게 그리 친절하지가 않거든요. 한국에도 내 책들이 한국의 전통 문학을 오염시켰다고 말하는 평로노가들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러너데 일본 평론가들은 정도가 더 심해요.

당신에 대한 가장 흔한 오해는 어떤건가요?

평론을 안 읽으니 잘 모르겠지만 샅샅이 다 찾아 읽는 아내의 말을 종합해보면, 일본의 평론가는 일본 문학에 대해서 '이쪽'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원칙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난 '이쪽'이 아니라 '저쪽'으로 가고 있잖아요? 그걸 답답해 하는 것 같아요. 게다가 뚜렷한 내 독자층이 있고 책은 세계 여러곳에서 팔리고 있으니까, 일본 작가인 내 책의 주제가 다르게 잡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당신을 둘러싼 그 수많은 얘기들을 어떻게 다 감당하시죠?

더 강해졌어요. 갑자기 유명하게 됐다고 생각해 보세요. 살아남기 위해선 강해져야 하죠. 사람들은 세계적인 작가라고 칭송하다가 곧 이용해요. 롤러코스터를 타는것처럼. '상실의 시대'가 날개 돋친 듯 팔렸을 때 난 우울했어요. 무거운 짐이었죠. 게다가 아시다시피 평론가들이 베스트셀러 작가를 싫어하는건 만국 공통이잖아요.

하루키상의 마음을 다치게 한 일이 많았나 봅니다.

제 처녀작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3만부가 팔렸고 '양을 쫓는 모험'은 13만부가 팔렸대요. 그 정도가 제게 익숙한 독자 수였어요. 잘했을 때 10~15만부, 그런데 '상실의 시대'가 나왔을때 갑자기 2백만부가 팔렸고 그리고 그때부터 모든 스트레스가 시작됐죠. 어쩐 일인지 균형을 잃고 만 거예요. 하지만 '상실의 시대' 이후 다시 독자수가 20만 정도로 돌아왔어요. 최근작 '어둠의 저편'은 30만부가 나갔다니까요. 그 정도가 전 딱 좋아요. 편안하죠.

하루키는 이 부분에서 굉장히 오래 생각했고 신중히 답했다. 수려하진 않았지만 정확한 영어였다. 하루키는 '먼 북소리'에서 당시의 심상을 이렇게 풀어놓았다. "신문에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어느 서점에서나 '상실의 시대'가 1위였다. (중략) 그렇지만 -이런말을 하는 것이 분수에 맞지 않고 오만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일종의 안타까움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어디를 가도 내가 있을 곳을 찾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상실의 시대'가 백 몇십만부 팔리고 나자 나는 굉장히 고독했다. (중략) 지금 생각하면 결국 나는 그런 상황에 놓이는 것이 체질에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성격도 못 될 뿐더러 그런 그릇도 되지 못한다"

하지만 그 옛날 괴테는 백만 명의 독자도 기대하기 어려운 작가는 단 한줄의 글도 쓰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잖아요. 괴테가 틀린걸까요?

틀리죠. 제 기준으로는. 만약 내 책을 읽는 이들이 아주 적다고 해도 난 쓸거예요. 왜냐면 난 어떻게든 표현해야만 하니까. 멈출 수 가 없어요. 운명이에요. 써야 하니까 쓰는 거예요.

그럼 잘 안 팔릴 줄 알면서도 쓰신 책이 있었나요? 왜 대중적인 인기는 없을 줄 알았지만 그래도 만들고 싶었다고 말하는 영화 감독처럼요.

베스트셀러를 만들기 위해 쓴 적도 없지만, 나만 읽겠구나 하면서도 불도저처럼 밀고 나간 소설도 없었어요. 뭐랄까, 제 독자들은 어느정도 저의 스타일에 중독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충성심이 있는 거죠. 그래서 다음 작품이 괜찮은 정도만 되면 읽어줄 거라고 믿어요. 책이 너무 형편없으면 실망하고 안 사겠지만 적어도 형편없지 않을 자신은 있어요.

멋집니다. 하루키상.

하하.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괜찮은 성적인 것 같지요? 저도 러브스토리를 좋아해요. 소년이 소녀를 만나 일어나는 행복하고 슬프고 즐거운 러브스토리. 하지만 그런 소설을 쓰자면 위험 요소가 있어요. 나의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제겐 작가로서 나름대로 구축한 흐름이랄까, 방향이 있어요. 나를 믿고 그 쪽으로 따라와주는 독자들은 하루키가 이번에 이런 소설을 만들겠구나. 하는 믿음이나 어떤 확신이 있을 거예요. 그 확신을 흩트려놓고 싶지가 않아요. 러브스토리, 미스터리, 모두 나쁜 건 아니죠.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야기를 하는 건 자연스럽고 좋은 일이니까. 다만 내 소설에는 내 안의 세계를 담고 싶어요.

당신이 걸어가는 그 길의 종점은 어디인가요.

제 목표는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같은 책을 쓰는거예요.

어떤 면을 말씀하시는 거죠? 복잡하고 다양한 캐릭터와 구성?

물론.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안에는 전 우주가 담겨 있어요. 너무 다양한 사실들과 시스템, 세계, 스토리가 그 안에 다 들어가 있어요. 몇 번을 읽어도 또 배울 점이 있죠.

'위대한 개츠비'도 좋아하는 책으로 유명하죠. 하지만 당신이 하도 좋다고 해서 '위대한 개츠비'를 봤다는 독자들 중에 당신의 편애를 이해 못하겠다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어떤 점이 그렇게 좋은거죠?

어려운 질문이에요. 뭐랄까 '위대한 개츠비'는 나에게 교과서라고 할 만한 책이에요. 스토리를 구성하는 법, 대화를 불러오는 법, 글쓰기에 관한 모든것을 그 책에서 배웠으니까요. 수도 없이 읽었고 지금도 읽고 있어요. 읽을 때마다 항상 배울 점이 있어요. 단어 선택도 좋고 문장도 유려하고 스토리도 훌륭해요.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죽기 전에 '위대한 개츠비'를 번역하겠다고 쓰신 적이 있죠.

네. 서른네 살 때였을 거예요. 내가 예순이 되기 전에 반드시 '위대한 개츠비'를 멋지게 번역하리라 다짐했었어요. 예순이 되려면 몇년 남았지만 지난 10월에 번역을 마쳤어요. 출판한 지 열흘 정도 됐을 때 이미 14만부가 나갔대요. 기다려준 독자가 많았나 봐요.

당신이 번역한 '위대한 개츠비'를 냉정하게 평가한다면요?

잘한 것 같아요. 일본엔 대여섯 권의 '위대한 개츠비' 번역본이 있는데 아마 내가 한 것이 최고일 거에요

그 자신감은 어디서 오는 거죠?

말할 것도 없어요. 분명한 사실인걸요. 번역하면서 일본어의 어떤 단어가, 혹은 문장이 '위대한 개츠비'의 원어를 대신할 수 있을까 신중히 생각했고 골라서 썼어요. 그게 참 어려웠고 동시에 가장 재미있었던 점이요.

자주 언급하시는 F.스콧 피츠제럴드, 레이먼드 챈들러, 리터드 브라우티건, 커트 보네거트 같은 작가 외에 좋아하는 일본 작가도 있나요?

오에 겐자부로. 일본 작가의 작품은 많이 읽진 않았지만 그의 작품은 좋아해요. 어려서부터 전 외국문학을 더 좋아했어요. 특히 러시아 문학에 심취해 있었고 영어를 배우면서부터는 영어로 읽는 것을 즐겼어요.

요즘 작가 중 그들과 비교할 만한 이가 있을까요?

음, 내가 찾은 바로는 아직 없어요. 좋아하는 작가가 있지만, 어렸을 때처럼 이런 글을 쓰면 좋겠다 싶은 작가는 못 찾은 것 같아요.

지금 한국에서는 새롭게 등장한 일본 작가들의 작품이 대단히 인기를 모으고 있습니다. 에쿠니가오리, 요시다슈이치, 가네시로가즈키, 온다시쿠등 '포스트 무라카미 하루키'라고 명명하기도 하는 일본의 젊은 작가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대답하기 전에 우선, 아시죠? 나도 아직은 젊은 축에 속한다고요! 일본 현대 문학은 잘 안 읽어요. 소설을 쓰지 않을 때는 전 주로 번역을 하는데 번역하는 책과 관련된 책 위주로 읽기 때문에 다른 책을 읽을 시간이 없어요. 내가 안 읽어도 다들 잘만 하고 있는 것 같은걸요.

언젠가 에세이에서 한 문하생이 자신의 소설을 평가해달라면서 당신에게 원고를 보냈다고 썼습니다. 그 문하생이 장어덮밥을 대접한다길래 만나서 평을 해주었다고 했죠. 누구라도 장어덮밥만 사면 당신에게 평가를 받을 수 있나요?

정말 제가 그런 얘기를 했던가요? 요즘은 남이 쓴 원고에 대한 비평은 하지 않는 편이예요. 종종 그런 부탁은 받지만 정중히 거절해요. 도움이 되고 안되고를 떠나 조목조목 따지고 비판하는 것이 싫어요. 하지만 멋진 여인이 와서 "내 원고를 좀 읽어주세요" 라고 한다면 제가 어찌 안돼! 라고 말 수 있겠어요(웃음)

어렸을 때 이렇게 성공한 인생을 살 거라는 생각은 해보셨나요?

전혀요. 전 일단 작가가 될 거라는 상상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러니 제가 얼마나 놀랐겠어요. 스물 아홉 살 내가 소설가가 됐을 때 친구들도 안 믿었어요. 어릴 땐 쓰고 싶은 것이 하나도 없었어요.

일기도 안 쓰셨어요?

네. 난 일기 쓰는게 정말 싫었어요. 편지도 싫었죠. 그런데 우리 아내에 따르면 연애편지는 참 잘 썼대요. 굉장히 감동적이었다고 하던걸요? 생각해보면 아내가 나랑 결혼한 것도 그때 쓴 편지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명색이 전문 작가니까(웃음)

그럼 뭐가 되고 싶으셨어요?

글쎄, 별로 없었어요. 다만 난 음악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그래서 재즈바를 오픈했고, 재미있게 일했어요. 결국 소설을 쓰게 됐지만.

다시 소설얘기로 돌아가 볼게요. 하루키상도 종종 주인공에 연민을 느끼시나요? 당신의 소설을 읽다보면 슬프고 외로워집니다.

물론입니다. 동정이 없으면 어떤 것도 쓸 수가 없잖아요. '스푸트니크의 연인'을 읽었다고 했죠? 주인공이 열아홉살 레즈비언이잖아요. 쉰살을 넘어 이 소설을 시작했는데 그 때의 내가 열아홉의 여자아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레즈비언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알았겠어요. 알리가 없죠. 하지만 온 힘을 기울여 나 자신을 스미레에 투영시키면 그렇게 연민을 갖고 접근하면 스미레로 살다 보면 그림이 그려져요. 아, 이런 기분으로 사랑하겠구나. 이래서 서운했구나. 그녀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거예요. 모든 건 강한 동정에서 시작해요.

"22살의 봄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랑에 빠졌다. 드넓은 평원을 곧장 달려가는 회오리바람 같은 격렬한 사랑이었다"로 시작하는 '스푸트니크의 연인'은 두 여상간의 사랑을 그리고 있죠. 뮤라는 이름의 한국인 여자주인공을 어떻게 탄생했나요? 실제 모델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제 어시스턴트가 재일 한국인2세예요. 지난 10년간 가장 가까이에서 절 도와준 친군데, 그녀를 보면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어요. 가족에 대해 얘길 많이 했거든요. 책을 쓰기전에 미리 꼼꼼히 연구를 하고 조사를 하는 타입은 아니에요. 가끔, 아주 가끔 그런 일이 있기도 하지만. '해변의 카프카'의 배경이 된 시코쿠에 대해 쓸 때도 그 근처는 가본 적도 없었어요. 나중에 책을 쓰고 가봤는데, 뭐랄까 데자부같은 느낌이었어요. 한국에도 가본 적은 없지만, 그녀에게 들은 이야기에서 출발해 열심히 상상했어요. 참, 그녀는 아름답기까지 해요.

당신도 누군가를 그렇게 사랑한 적이 있습니까? 드넓은 평원을 곧장 달려가는 회오리바람같이 격렬하게?

흠. 내 어렸을때요. 분명, 진실로 최근 일은 아니에요(웃음)

조금 더 얘기해줄 수 있어요?

별로 로맨틱하진 않은데 (옛일을 회상하듯 고개를 숙이고 2분 정도 생각하더니 마침내) 미안하지만 내 이야긴 노코멘트.

노코멘트인 이유라도?

그냥, 내 추억은 내 안에 간직하고 싶어요.

여기까지 얘기했는데 예정된 두 시간이 모두 흘러버렸다. 그는 왼쪽으로 꼰 다리를 오른쪽으로 딱 한번 바꿔 꼬았을 뿐인데 말이다. 그는 아직 할 얘기가 많은 것 같았다. 묻고 싶은 것 역시 많았다. 그래서 우리는 40여일이 지난 11월의 마지막 날 오후, 다시 한 번 같은 나무 의자에 마주 앉았다. 하루키의 주름 많은 따뜻한 손과 두번째 악수를 나누기까지 실은 상당량의 에너지를 소모해야했다. 어쩐일인지 그는 두번째 인터뷰를 다소 늦추고 싶어하는 듯 했다. 만나기 약 열흘 전 '프란츠카프카 문학상'을 받고 돌아온 하루키의 얼굴에는 아직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시간 내 주셔서 고맙습니다. 몇번의 독촉 이메일로 모자라 결국 하루키상의 집 번호와 휴대폰 번호를 누르면서 이럴 권리가 없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어요. 프라이버시와 자유를 무엇보다도 중시하는 당신을 존중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기어코 포토그래퍼와 어시스턴트까지 대동하고 나타난 제 말을 믿으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믿어요. 제 때 답신을 하지 않은 변명을 하자면 프라하에서 돌아온 이후 다소 지쳐 있었어요. 그 때 이후로 모든 인터뷰 요청을 거절하고 있어요. 또 전에 얘기했듯이 제 원칙이 모든 인터뷰는 단 한번, 두시간 이상은 하지 않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이번 인터뷰는 여러가지로 특별했으니까 예외를 둔 것이었죠. 이해해주니 나도 고맙습니다.

프라하는 어떠셨어요? 좀 피곤해 보이세요.

프라하는 좋았지만 시상식은 전혀 행복하지 않았어요. 기자들이 너무 많았어요. TV녹화는 프라하의 지역 방송국으로만 제한을 하기로 분명 언급을 했는데, 나중에 보니 일본 방송국에 필름을 팔았어요. 일본 전역에 뉴스가 나갔어요. 지금도 마음이 불편해요. 그래서 돌아온 후로는 어떤 미디어 접촉도 피하고 있는 거예요. 보통 때보다 특히 더 민감하게 방어태세를 갖추게 된 거죠.

하루키상은 좀처럼 화를 내시지 않을 것 같아요. 무엇이 당신을 불쾌하게 하나요.

기자나 카메라맨, 미디어 관련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

잠깐, 우선 거기서 저는 좀 빼주세요.

오케이, 당신은 제외입니다.

프라하 수상식 일에 대해서 당신이 느끼는 당혹감은 이해가 가지만 아마도 언론들은 국민의 알 권리를 이야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일본국민이 자랑스러워하는 스타작가니까요.

만약 내가 야구선수가 영화배우라면 그렇다면 TV에서 내 얼굴을 보여줘야 맞는것이겠지만 작가인 나는 TV에 나가지 않아도 되는거 아닌가요? 작가는 원한다면 익명성을 보장 받을 권리가 있어요.

수상사실 자체는 행복한 일 아니었나요?

솔직히 아니에요. 난 그런 문학상에는 관심이 없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작년에 누가 노벨 문학상을 탔는지, 재작년에는 누구였는지 기억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기억하는 건 좋은 스토리, 좋은 소설이죠. 내게는 독자가 전부예요. 독자가 내 소설을 기억해준다면 그걸로 족해요. 문학상은 잊혀지는 거니까, 큰 의미는 없어요.

지금 쉰 여덟이시죠? 지금은 어떤 것들이 당신을 행복하게 하나요.

아니, 만으로는 쉰 일곱이라고요(웃음) 스무살 땐 여자친구랑 데이트하는게 좋았어요. 지금은 글을 쓸 때가 가장 행복해요.

데이트보다 글 쓸때가 더 행복하다니. 하루키상에게 매력적인 여자란, 당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100% 여자아이란 어떤 모습인가요?

100% 여자아이라, 사실 전 여자에겐 별 기대를 안해요(웃음) 좀 난해한 존재여야지. 제가 그들에게 기대하는 건 단 하나, 저와 있을 때 즐거운 시간을 갖는거예요. 아무리 예쁘고 똑똑해도 나와 대화가 안 통한다면 그건 싫어요. 하지만 내가 농담을 했을 때 그녀가 웃어준다면 그걸로 충분히 행복해요

영화 이야기 - '국경의 남쪽'과 '남과 북'

작성중
부제 : 영화 이야기를 핑계로 가볍게 이야기하는 무거운 것들...



국경의 남쪽 남과 북

개봉 : 2006년 개봉 : 1965년
제작사 : 싸이더스FNH
감독 : 안판석 감독 :김기덕
출연 : 차승원/조이진/심혜진 출연 : 신영균/엄앵란/최무룡
각본 : 정유경 각본 : 한운사
음악 : 한재권 음악 : 박춘석